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한국협동조합연구소는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전화로 하루 종일 분주하다. 다음달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 농업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 같은 협동조합을 5명만 모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장은 "4명이 전화를 받는데 많을 때는 40~50통까지 문의가 온다"고 전했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도 법 시행에 맞춰 아이들에게 경제와 인성을 가르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수백 개에서 수천 개까지 새로 협동조합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처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 다가오면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제도를 보면 구멍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협을 비롯한 기존 협동조합의 혜택은 받지 못하는 반면 감독인력은 부족하고 일부 소액신용대출이 가능한 조합의 건전성 감독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감독인력 태부족=협동조합은 옛날의 두레나 계를 생각하면 쉽다. 1인 1표로 조합원끼리만 혜택을 보면서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농민들이 가입하는 농협과 특정 회사나 단체가 가입하는 삼성전자새마을금고ㆍ약사신협이 협동조합의 예다.
그런데 농협ㆍ신협ㆍ새마을금고 같은 기존의 조합들은 이제 사실상 새로 조합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정부는 조합을 통폐합해 숫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부터는 5명만 모이면 제한 없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아파트단지에서 아이들 육아를 위한 육아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고 산지에서 농산물을 싸게 사기 위한 조합도 가능하다.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된다.
문제는 협동조합을 관리감독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반 협동조합은 지방자치단체에 설립등기만 하면 되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관련 부처의 인가를 받으면 된다. 예를 들어 육아조합이라면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는 것이다.
이 중 정부 인가를 받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조합이 부실해지거나 횡령사건이 발생하면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협동조합과 관련해 부처별로 추가로 인력이 늘어나는 게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대부업체 관리를 하면서도 인력이 부족해 사실상 방치돼 있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부처별로 관련 인력 확충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협동조합이 망하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만 신협은 지난 2006년 부실로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협동조합이 난립할 수 있다는 걱정도 많다. 특히 농협이 그렇다. 기본법이 발효되면 새로 농협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존 농협 조합장 선거가 매우 과열돼 있는 상황에서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이 따로 나와 자신만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더 혼탁하게 될 수 있어 농림수산식품부는 고민하고 있다.
◇건전성 관리 제대로 될까=사회적 협동조합은 출자금의 3분의2 범위에서 소액대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자본금의 66% 이내에서는 서민대출이 가능한 셈이다.
문제는 대출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여부다. 정부는 건전성과 조합의 전반적인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조합원이 200명 이상이거나 출자금이 30억원 이상인 곳은 경영공시를 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저축은행 사태에서 봤듯 경영공시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이를 감독할 인력도 없는 상태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공시만 믿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부는 소액대출은 연 5% 금리 내에서 운용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연체금리는 이자제한법(연 30%)을 적용하겠다고 해 고리대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기존의 개별 협동조합법과의 비대칭 규제도 빨리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농협은 농식품부, 신협은 금융위원회,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 생협은 공정거래위원회, 협동조합기본법은 재정부로 관리부처가 쪼개져 있다.
◇혜택은 전혀 없어=정부는 협동조합을 늘려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고 사회적 일자리도 만든다는 생각이지만 혜택은 전혀 주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농협 같은 기존의 대형 협동조합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이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생기는 조합에는 주어지지 않을 예정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게 배당세다. 현재 농협이나 신협은 출자금 1,000만원까지 배당소득세(15.4%)가 면제된다.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생길 일반 조합들은 영리행위를 할 수 있어 배당이 가능하지만 역으로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법인세 혜택도 그렇다. 농협 같은 기존 조합들은 9%의 낮은 세율을 적용 받고 있다. 새로 만들어지는 조합들은 처음이라 덩치가 작아 면세점 이하일 가능성이 높지만 원칙적으로 혜택에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기존 조합들은 고유업무용 부동산을 살 때도 취득세와 등록세가 없다.
세제 당국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조합들이 얼마나 생기는지 두고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법이 생겨 법적인 보호틀이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도 "다른 협동조합과의 차별은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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