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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아닌 힘으로 강요…서민 지원 빌미로 시장 본질 왜곡

직접적인 가격 개입보다는 금융시장 구조 개선해야

노태식(왼쪽 두번째) 전국은행연합회 부회장이 지난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은행권의 새로운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 도입과 관련한 회견을 갖고 있다. /김주성기자

“정치권이 금융사들에게 서민을 지원하라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서민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식으로 이뤄져야지 민간회사의 가격이나 영업전략을 직접 정치권이 주무르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합니다.”(A금융사의 최고경영자) 금융사와 정치권의 충돌은 기본적으로 힘의 우열이 너무 크다. 정치권이 양쪽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결과는 뻔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다 해도 자연스런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반드시 문제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금융산업은 기간산업이고 일종의 면허사업. 이 때문에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해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은행 등이 여전히 금융사라고 불리기 보다 금융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 정치권의 금융사에 대한 압박은 사회적 배려에 대한 요청의 다른 모습이다. 문제는 금융권과의 합리적인 대화를 통한 합의가 아니라 입법력과 정치력을 동원한 정치적 힘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민 대책 빌미로 금융 본질 왜곡해선 안돼=금융권도 서민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선 깊이 공감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이 저신용자 지원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미소금융사업에 각 사별로 연간 수백억원씩을 출연하기로 한 것이나 각 금융지주사들이 자체적으로 사회공헌 사업규모 확대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차원이다. 은행에 따라선 금융위기 이후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상품을 별도로 내놓는 경우도 많다. 정치권은 금융사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익에 비해 사회공헌 활동의 규모나 내용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인 홍준표 의원이 최근 ‘은행 수익 10% 서민 대출 할당‘을 골자로 하는 입법 추진 방침을 밝히며 은행을 압박했던 것도 이 같은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올해 들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캐피털사들의 고금리 대출을 질타한 것이나 여야 의원들이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및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금융사의 경영진도 정치권의 서민금융대책 취지에는 100% 공감하고 있다. 한 대형카드사 임원은 “카드사도 인지상정을 가진 똑 같은 사람이 경영하는 것인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에 왜 반대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식회사의 경영자가 주주에 대한 책임과 자유시장질서라는 본질까지 거슬러 가면서 민간회사의 본질적 권한인 가격정책까지 정치권에 내 맡길 순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 은행의 임원도 “금융사는 예금 고객의 대리인”이라며 “따라서 기본적으로 대출고객의 신용을 보고 그 채무상환 위험도에 상응하는 가격(금리)을 메겨 예금 고객의 돈을 빌려줄 수밖에 없는 데 ‘저신용자에게 정상 신용자보다 더 싸게 돈을 빌려주라‘는 식의 정책은 금융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금융 문제는 구조적으로 풀어야=금융권은 서민의 금융소외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인 신용계층을 이외에 저신용계층을 담당하는 서민금융기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장환경을 정비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는 “서민지원의 최접점에는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와 같은 서민금융사가 서고 거기서 해결이 안 된 저신용자들은 미소금융재단과 같은 공적 기관이 맡으며 그 조차도 대상이 안된 사람은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중은행에게 서민금융사의 몫까지 떠넘기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며 “시중은행들은 수익의 일정부분을 기금형태로 출연해 사회공헌에 쓰는 방향으로 (정치권이) 유도해야지 직접 모든 저신용자들을 다 챙기라는 식으로 강요해선 안된다”고 항변했다. ◇금융사의 자발적 서민지원 노력도 필요= 정치권이 시장 직접 개입보다는 ‘시장 본질 왜곡 없는 서민지원 대책’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선 민간 금융권 역시 그에 상응하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민간 은행과 제 2금융권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서 정치권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서민들의 금융소외 현상은 심화됐다. 특히 금융사들은 모든 계층고객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신용평점시스템(CSS)에만 의존해 매너리즘식 대출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점을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사들은 저신용자 중에서도 실질적인 대출상환능력이 있는 성실 차입자를 가려내 이들을 선별지원할 수 있는 특화된 여신심사체계와 대출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은행 등의 영업점 및 영업직원의 실적 평가실적이 대출규모와 회수율에만 집중된 나머지 상대적으로 소액이고 회수율이 불투명한 저신용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저신용계층에 대해 대출영업을 한 직원 및 지점에 대해선 가점을 주고 해당 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라도 일정한 한도 내에선 면책해주는 식의 금융사 내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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