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군주인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서양문물을 깊이 익힌 소현세자가 살아서 즉위할 수 있었다면…’. 만약은 없다는 역사에 가정을 포기하기 어려운 것은 아쉬움이 많은 탓이다. 정조나 소현세자가 더 살았다면 우리 역사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회한이다. 소현세자와 정조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독살설이다. 500여년동안 이어져 온 조선왕조가 배출한 27명의 왕 가운데 독살설에 휘말린 왕은 7명. 여기에 즉위했다면 최고의 성군이 됐을 것이라는 소현세자까지 합치면 8명에 달한다. 국왕 4명중 한명꼴이다. 도대체 누가 왜 왕을 죽였을까?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의 ‘조선 왕 독살사건’에 해답이 있다. 왕을 죽인 것은 기득권 세력. 권력과 부귀를 유지하기 위한 당파싸움에 젖은 신하들에게 왕은 당론 다음의 존재였다. 파벌의 입장과 반대에 서는 왕은 독살을 당해야 했다. 왕을 독살한 세력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가를 보면 뻔하다. 여기에 우리 역사의 아픔이 있다. 왕의 독살 후 정권을 잡은 것은 언제나 파당과 세도가문, 친일세력이었다. 저자는 정조 사후 등장한 세도정치를 역사의 반동이자 후퇴였으며 사실상 조선의 멸망이라고 단언한다. 정사와 야사는 물론, 사진과 그림까지 곁들여져 치밀하게 재현된 독살의 과거사는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고 있다. 왕을 독살한 파당과 오늘날 당리당략에 젖은 정치인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반성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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