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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약속시간인 오전7시30분보다 7분이나 앞서 회동장에 입장했다. 의전을 둘러싼 기싸움과 신경전이 유난히 뜨겁기로 소문난 한은과 기획재정부 수장 간의 만남에서 한은 총재의 파격적인(?) 기다림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진기자들은 부랴부랴 셔터를 누르기 바빴고 재정부 실무자는 급하게 장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총재가 벌써 왔으니 서둘러 장관을 모시라"고 전했다. 회의에 앞선 모두발언 자리는 두 수장 간의 화기애애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김 총재는 워커홀릭계의 대부이자 사표"라면서 정무수석(박 장관)과 경제수석(김 총재)으로 청와대 한솥밥을 먹은 인연을 표시했고 김 총재는 "박 장관만큼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갖춘 사람도 찾기 힘들 것"이라며 추켜세웠다. 7살 위인 김 총재가 발언을 이어갈 때마다 박 장관은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밀월 관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양측은 회의 직후 '거시정책실무협의회'를 구성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과 이주열 한은 부총재를 대표로 담당 국장이 배석하는 월 1회 협의회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공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오전6시에 기자회견을 강행하고 서로에게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며 삿대질을 하던 게 불과 3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셈이다. 협의체에서는 통화금융뿐 아니라 물가 등 거시경제정책 전반을 다룰 예정이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중시하는 김 총재의 성향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여건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정부와 통화당국이 정보를 교환하고 공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경제의 부문 간 격차,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현안 점검, 저축은행 사태 등 경제 전분야에서 앞으로 실무협의회를 통해 양 기관 간 공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양 기관의 이런 형식의 협의는 결국 국가경제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기관은 "순수한 뜻"이라고 강변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무엇보다 공조를 빌미로 정부가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인 통화정책에 간섭할 여지가 더 많아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정부 1차관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행사하는 열석발언권부터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논란이 여전한 상황에서 실무협의회가 사실상 금리정책을 조율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대두되고 있다. 이미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한은 총재 등이 참여하는 경제금융대책회의(청와대 서별관회의)가 거의 매주 열리고 차관급이 참석하는 경제ㆍ금융상황점검회의도 있는데 별도의 거시정책을 다루는 실무협의회가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도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금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밀착된 공조보다는 적절한 견제와 한은의 독립성이 더 필요한 때"라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두고 벌어진 통화정책 독립성 논란이 더 커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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