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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금융구조조정] 1. 정부의 정책부재
입력1999-09-01 00:00:00
수정
1999.09.01 00:00:00
김영기 기자
이대로는 안된다.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성공은 구조조정의 또다른 축인 기업 구조조정의 선결과제다. 양축이 선순환해야 경제의 하부구조도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제일·서울은행과 대한생명 등 이른바 「빅3」에서 비롯된 금융 구조조정의 위기, 그 본질과 원인을 긴급 점검하고 해결방안은 없는지를 시리즈로 조명해본다.【편집자 주】1. 방향을 상실한 금융구조조정
지난 1998년 6월.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대규모 감원에 반대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은행원들을 찾았다. 李위원장은 금융노련과 협상하기 위해 은행회관으로 가던 중 퇴출은행원들로부터 봉변을 당해야 했다. 국민은 이들 은행원을 감싸기보다는 구조조정에 헌신하는 李위원장에게 성원을 보냈다.
1999년 9월. 정부의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피 같은 세금을 바치면서도 구조조정이 신속히 완결될 것을 바라며 침묵을 지키던 국민이 이젠 지쳐가고 있다. 대신 차디찬 냉소가 정부를 향한다.
국민의 인내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다. 금융산업을 이끄는 정부의 정책부재다. 국민은 금융 구조조정을 이끄는 정부가 방향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고 본다.
제일·서울은행은 정상화를 기약하지도 못한 채 조직만 망가졌다. 제일은행 매각을 위해 뉴브리지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서울은행은 매각협상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결렬수순에 들어갔다. 남은 것은 또다시 이어지는 「공적자금 추가투입을 통한 선(先)정상화」. 제일·서울은행은 「대마불사」의 신화 속에서 국내 최대은행이라는 한빛은행을 3개나 세울 수 있는 혈세를 잡아먹었다.
대한생명은 정부의 어리숙한 대응에 법정에 선 것도 모자라 법적 절차 미비라는 「블랙 코미디」 같은 이유로 법정에서 사실상 패배, 금융기관의 장래조차 불확실하게 만드는 지경으로 몰렸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경기회복으로 관료들의 위기의식이 퇴색한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기영(鄭琪榮) 삼성금융연구소장은 『현재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실타래가 얽혀 있는 상태』라며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없어진 데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실제로 연초부터 제일·서울은행 및 대한생명 처리문제에 「순박할 정도」로 쉽게 다가섰다. 그러나 이는 철저한 실리를 추구하는 외국인의 눈에는 「아마추어 협상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정부는 단지 「얼마를 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식 협상으로 일관, 시간만 낭비했다. KDI 관계자는 『외국에서 기업 인수합병(M&A)작업은 「속전속결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며 『제값을 받겠다고 나서는 통에 금융기관은 점차 멍들고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鄭소장은 『한 은행을 다소 싼 가격에라도 우선 팔든지 안될 것 같으면 미리 방향을 바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세웠던 세가지 원칙에 대한 면피는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울은행은 협상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결렬을 선언했다. 해외매각 추진의 목적을 망각한 결과다.
방향실종은 대한생명 처리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값이 너무 싸다」며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의 투자가들을 쫓아보내더니 LG그룹의 참여를 놓고는 당국자들끼리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지난 3월부터 무려 6개월 동안 허송세월만 했고 대생 처리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합병과 퇴출의 회오리 속에서 은행에 기대했던 것은 「클린 뱅크」였다. 그러나 이제 은행의 「클린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제일·서울은행에 막대한 세금을 퍼붓는다지만 연말께 다시 한번 거액을 넣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시중은행들은 한없이 늘어나는 부실에 자본확충 노력도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자본을 늘린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실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국 남은 해법은 세금을 다시 넣어 은행을 한번 더 청소하는 것뿐이다. 금융연구원의 고성수 박사는 『기업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금융기관의 2차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돌면서 뒷받침이 원활히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의 양 톱니바퀴가 선순환을 해도 힘든 판에 두 부분의 틈새가 벌어진 채 따로 노는 형국이라는 설명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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