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캐나다의 스마트폰 회사인 블랙베리(옛 리서치인모션·RIM)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또 터져나왔다. 벌써 네 번째다. 더욱이 로이터통신은 15일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블랙베리 인수가격으로 8조원 이상을 제시했다고 금액까지 적시했다. 삼성전자와 블랙베리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하면서 이번에도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업계에서는 블랙베리 인수설이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를 넘어 사물인터넷(IoT) 생태계와 기업간거래(B2B) 시장 주도권을 노리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블랙베리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블랙베리 인수를 전격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보고 있다.
◇잊을 만하면 피어나는 블랙베리 인수설=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블랙베리 측에 인수가격으로 최근 주가(주당 10달러)보다 38~60% 높은 수준인 주당 13.35~15.49달러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전체 인수가격으로 환산하면 최대 75억달러(약 8조1,112억원)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이와 비슷한 가격에 블랙베리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루머는 지난해 11월에도 월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중국의 레노버가 당시 주당 15~18달러에 블랙베리 측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고 삼성전자도 이에 못지않은 가격을 불렀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도 "(인수 추진) 정황이 아예 없지 않았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IT모바일(IM)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신종균 사장 등 극소수 외에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말 북미 시장의 50% 가까이를 점유하며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블랙베리는 2010년대 들어 삼성전자·애플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매각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레노버와 함께 잠재적 인수자로 끊임없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12년과 2013년에도 일부 외신이 블랙베리가 먼저 인수를 제의했다고 보도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일축했다. 이날 로이터 보도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논의한 적도 없는데 금액까지 나왔는지 이해 못하겠다"며 적극 부인했다. 블랙베리도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지 2시간 만에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사가 공식 부인하면서 인수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인수합병(M&A)과 관련해서는 최종 확정 전까지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다 이번에는 증권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 전에 언론을 통해 인수를 부인한 것이 수상쩍다는 것이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소프트웨어를 강화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블랙베리를 충분히 탐낼 만하다"고 말했다.
◇블랙베리가 삼성전자에 매력적인 이유=삼성전자의 블랙베리 인수설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블랙베리가 갖춘 보안 성능과 이를 기반으로 한 4만4,000여건의 기술특허 때문이다. 현재 블랙베리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0.6%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국 백악관·국방부 관리들의 대다수가 아직 블랙베리 단말기를 사용할 정도로 B2B 시장에서 탁월한 보안성을 인정받는다.
삼성전자는 자체 모바일 보안 플랫폼인 '녹스'를 앞세워 공공기관·기업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애플에 비해 밀린다는 평가가 많다. 삼성전자와 블랙베리의 운영체제가 달라 합병에 따른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지만 양사가 합칠 경우 단말기·보안솔루션 B2B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애플·마이크로소프트·샤오미 등 강력한 자체 운영체제(OS)를 갖춘 경쟁사와의 특허 대결에서도 한층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와 블랙베리는 지난해 11월 녹스와 관련해 협력을 맺은 바 있어 인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홈·스마트차와 같은 IoT 시장에서 플랫폼 선점을 노리는 삼성전자로서는 블랙베리가 안성맞춤이다. 블랙베리는 이달 초 공개한 자체 IoT 플랫폼 외에 BMW·폭스바겐의 스마트차에 탑재되는 OS인 QNX 소프트웨어도 보유한 상태다. 모두 견고한 데이터 보안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연구원은 "자체 OS를 운영해본 블랙베리의 경험은 독자 OS인 타이젠 생태계 구축을 꿈꾸는 삼성에 가장 필요한 자산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8조원이 넘는 메가 딜이 성사될 경우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체질을 혁신할 일대 승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구글·애플에 비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M&A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일거에 해소하고 리더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매각이 결정된다 해도 자국 기업의 해외 기술유출을 우려한 캐나다 정부가 쉽사리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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