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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나비스코의 부채구조조정 작전
입력1998-12-02 00:00:00
수정
1998.12.02 00:00:00
나비스코(RJR NABISCO)는 1875년 담배회사로 사업을 시작한 후 1967년 일련의 인수·합병(M&A)를 통해 RJR FOOD라는 식품사업부를 설립하기 전까지 담배회사로 유명했던 기업이다. 나비스코는 1988년 KKR에 인수되기 전까지 비교적 양호한 경영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1987년 매출액이 158억 달러였고, 자산은 169억 달러였으며 총자산이익률(RETURN ON INVESTMENT)은 14% 수준.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장기부채의 비율도 30% 정도로 비교적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88년 KKR에 의한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이하 LBO)를 계기로 과도한 부채부담에 시달리면서 경영성과가 급격히 악화됐다.KKR의 나비스코 인수
KKR은 1976년에 설립돼 총 380억 달러 이상의 LBO 투자자금을 형성하여 35개 이상의 기업을 매수하는 등 LBO 전문회사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기업. KKR이 LBO를 통해 나비스코를 인수한 사례는 인수자금이 총 260억 달러에 달해, 현재까지 알려진 LBO 중 가장 큰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KKR이 나비스코를 LBO 대상으로 선정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비스코의 담배 및 식품사업은 환경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성장율도 안정적이었다. LBO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상기업의 사업위험이 낮고,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는 기업이어야 한다. 성장율이 높은 기업의 경우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게 되고, 환경변화에 따라 성장율이 변동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LBO를 시도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RJR의 담배사업은 9.8%, 식품사업은 3.5% 성장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두 사업 모두 장기적으로 낮은 성장율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담배나 식품사업의 특성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첨단기술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총매출액의 7% 정도만 투자되고 있었다.
둘째, LBO가 시도될 당시 나비스코는 낮은 부채비율을 보이고 있었다. LBO를 추진할 때 새로운 주주들은 부채조달능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위험이 낮고, 부채비율이 낮은 회사일수록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장기부채가 총자산의 30%에 불과하고, 사업위험도 낮은 나비스코의 경우 LBO에 가장 적합한 기업이었던 셈.
KKR이 나비스코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260억 달러의 자금의 대부분을 부채로 조달했다. LBO의 전형적인 자금조달 방법. 이중 KKR이 직접 출자한 금액은 15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KKR이 경영권을 인수한 후 나비스코는 매년 30억 달러 이상의 이자비용을 지급하여야 했다. 인수 전인 1988년 동사의 세후순이익은 약 14억 달러, 이자비용은 6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연간 30억 달러의 이자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났다. 또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자금을 유리한 조건으로 조달하기는 더욱 힘들게 되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 셈이었다.
기업가치회생 노력과 재무위기
3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이자비용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구축함으로써 사업의 수익성을 높여 이자비용을 보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낮은 이자율의 신규자금을 조달하여 이자율이 높은 기존 부채를 상환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했다.
이를 위해 인수자인 KKR의 입장에서는 담배사업을 잘 이해하고 있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1989년 KKR의 파트너 중 한 사람인 크라비스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유능한 경영자를 찾던 중 당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최고경영진으로 있던 거스트너(LOUIS GERSTNER JR.)를 나비스코의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인수 후 새로운 활로를 기대하고 있던 KKR이 새로운 사장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크라비스는 거스트너를 새로운 사장에 임명하면서 『회사가 정상화되는데 필요한 자본은 KKR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니, 마치 나비스코가 당신 개인 회사인 것처럼 운영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 이 말은 거스트너가 나비스코를 운영하는 동안은 대주주의 간섭이나, 주식시장의 동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권을 가지고 경영정상화에만 매진해달라는 당부였다.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새로운 경영자를 신뢰하겠다는 KKR의 의지이기도 했다.
나비스코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거스트너가 우선적으로 해야 했던 일은 수익성이 있는 사업위주로 사업구조를 조정하는 일과 부채구조의 획기적인 개선을 통해 금융비용 부담을 감소시키는 일이었다. 거스트너는 우선 나비스코가 가지고 있던 담배상표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식품사업부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한편, 해외생산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입안했다. 임기 말인 1994년까지 뉴욕 증시에서 명실상부하게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는 나비스코를 만드는 게 당시 그의 목표.
1989년 6월, 나비스코는 자회사 중 가장 큰 나비스코 유럽지사를 25억 달러에 매각했다. 또한 불필요한 유휴자산의 처분 및 고용조정 등을 통해 연간 5억5,000만 달러를 절감했다. 이는 영업이익의 12%에 해당하는 금액. 그리고 90년 4월까지 동사는 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지 못하는 수익성이 낮은 상품라인이나 브랜드를 매각하여 6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 덕분으로 여유현금흐름이 10억 달러 이상 예산을 초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매각이나 비용절감만으로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만들기는 힘들다. 증권시장으로부터 수익성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주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담배사업부의 이익 창출력이 큰 폭으로 증가하여야 했다. 나비스코의 미국 내 담배사업부인 RJ REYNOLDS는 매출액 규모로는 전체 매출액의 39%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전체의 58%를 차지하고 있었다. 만약 RJ REYNOLDS의 영업이익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거스트너의 계획도 차질을 빚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거스트너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미국내 담배시장 규모는 매년 2∼3%씩 감소하고 있었고, 경쟁사인 필립 모리스와의 가격경쟁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또한 소비자들이 가격변화에 민감해지면서 값싼 상품으로 속속 이동하고 있었다. RJ REYNOLDS는 이러한 근본적인 산업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스트너는 부임하자 마자 RJ REYNOLDS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기업가치회생작업(TURN AROUND)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제품믹스를 변화시키고, 고객들의 니즈를 적시에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 출시하였다. 그 결과 카멜 등 일부 상품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영업이익을 호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거스트너의 이러한 재건노력은 다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90년들어 미국 정크본드 시장이 붕괴되면서 나비스코도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신용평가회사들이 나비스코의 높은 부채비율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바람에 59억 달러에 이르는 회사채의 이자율을 높게 조정하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신규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자율 상승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가 더욱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1990년 정크본드 시장의 붕괴로 나비스코는 다시 태풍권에 휩싸이게 됐다. 투자가들이 회사채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신용등급이 다시 하향 조정됐다. 당시 부사장 겸 재무담당 임원이었던 쥬커만(FREDERICK ZUCKERMAN)은 부채구조조정을 통한 이자비용의 획기적 감소없이는 우리에게 생존은 없다고 말했다.
4단계 부채구조조정
위기를 맞은 나비스코는 부채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4단계 회생계획을 실시했다.
투자가들이 정크본드 시장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 나비스코의 회사채는 유통시장에서 액면가액의 60∼70% 수준으로 거래되고, 이자비용의 증가로 인해 동사는 심각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이에 따라 적어도 시장에서 회사채가 액면가액으로는 거래될 수 있을 정도로 이자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재무담당 임원인 쥬커만은 『많은 분석가들이 13.5~14% 정도의 변동이자율을 가진 나비스코의 회사채가 액면으로 거래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자율이 21%까지는 올라야 한다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21%의 이자를 부담하고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0년 7월 나비스코는 회사채 이자율을 17%, 17.4% 수준으로 상향 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총부채 238억 달러, 총자본 12억 달러로 부채비율이 2000%를 넘었던 나비스코로서는 이러한 금융환경시장의 변화로 지급불능에 빠질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나비스코의 경영진은 부채구조조정을 위해 70억 달러의 자본확충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이것은 동사가 전반적인 부채구조조정을 위한 4단계 작업 중 첫번째 단계의 작업이었다. 우선 18억 달러의 우선주를 발행하고, KKR의 증자를 통해 17억 달러를 조달하였으며, 은행으로부터 36억 달러를 차입하였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으로 나비스코는 LBO과정에서 발생하였던 고이자율 회사채 중 50%∼80%를 다시 사들였다. 이로 인해 부채비율이 2000%에서 440%로 크게 줄어들었다.
2단계에서는 1991년 3월 기업공개를 통해 조달된 자금을 이용해 이자율 17%의 회사채 12억 달러를 상환했다. 이를 통해 부채비율은 다시 370%수준으로 낮아졌다.
3단계로는 1991년 4월 회복세를 보이던 정크본드시장을 통해 15억 달러의 부채를 신규 조달하고, 증자를 통해 12억 달러를 새로 조달하였다. 특히 신규 부채는 10.5%의 이자율로 조달돼 이전에 비해 이자율이 크게 낮아진 것이었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나머지 회사채 및 부채를 상환하는데 사용됐고, 이에 따라 부채비율도 260%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부채구조조정 노력이 투자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MOODY'S)와 S&P가 나비스코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 바로 한단계 아래로 상향조정했다.
91년 10월 나비스코는 네번째 작업으로 두가지 자금조달방안을 발표하였다. 우선 보통주를 전환 우선주(CONVERTIBLE PREFERRED STOCK)으로 교환하는 것과 신규로 20억 달러 증자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 건의 신주발행을 통해 동사는 부채규모가 14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총 자기자본규모도 80억 달러로 확충되면서 나비스코의 부채비율은 170% 수준으로 크게 감소됐다.
이러한 4단계의 부채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나비스코는 LBO 이후 과도하게 늘어났던 부채구조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1994년 6월 새로운 CEO로 찰스 마이클 하퍼를 임명하면서 나비스코는 더 이상 부채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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