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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좋은데… 은행권 연초부터 명예퇴직 나서는 이유는

간부급이 61%로 인사적체·비용구조 악화<br>11년새 과장 이상 급증… "인사 적체 해소해 달라" 노조선 대규모 승진 요구<br>올 수익성 악화 우려에 경영진 선제적 대응도



새해 벽두부터 은행들이 명예퇴직에 몸살을 앓고 있다. 높은 실적으로 배당과 성과급 규모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은행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돼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나 등장하는 명예퇴직이 최고 수준에 육박한 실적을 낸 다음해에 나온다는 게 묘하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농협이 지난해 말 521명, 하나은행이 378명으로부터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데 이어 국민은행이 임금피크제 대상인 50대 이상 직원들로부터 '한시특별준정년퇴직'을 지난해 12월29일부터 신청 받았다.

지난해 3조원 안팎의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낸 신한은행도 최근 노조에 희망퇴직 시행을 요구했다. 노조와 합의가 이뤄지면 16일부터 명예퇴직을 접수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은행권이 이처럼 호황을 구가하는 와중에도 줄줄이 명예퇴직에 나서는 속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인력구조와 위기에 대응하려는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먼저 은행의 인력구조를 보면 은행권의 해묵은 '고령화' 문제가 금세 드러난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 2000년 말 국내 은행의 일반직원은 9만583명. 과장 이상 간부급이 4만662명(46%), 사원ㆍ대리 등 행원급이 4만8,921명(54%)이었다. 간부보다 행원이 많아 조직이 젊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뒤에는 반대의 현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은행의 전체 직원은 9만7,826명인데 간부급(5만9,660명)은 1만9,000명가량 급증한 반면 행원급(3만8,166명)은 1만명 이상 줄었다. 간부 대 행원의 비율은 61대39로 간부가 행원보다 많은 '역피라미드'형이 된 것이다.



간부가 많은 인력구조 하에서 승인인사를 시키기란 쉽지 않다. 반면 노조는 대규모 승진요구를 하고 있다. 인사적체를 해소해달라는 얘기다.

실제 산업은행은 사측에 대규모 승진 요구를 했고 국민은행 역시 최근 임단협에서 장기 승진누락자 100명을 승진시켜달라고 사측에 요구해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회사의 비용구조 악화도 이유다. 우리ㆍ국민ㆍ하나ㆍ신한 등 4대 은행의 남자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17.6년. 우리은행은 무려 19.3년이다. 직원 평균이 '부지점장'급이라는 얘기다. 부지점장 연봉은 8,000만~9,000만원인데 은행권이 고비용 구조의 질곡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고비용 구조는 위기 때 실적악화로 직결된다. 손을 쓰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올해는 수수료나 금리 등 규제 리스크와 실물경제 위기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예견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게 바로 명예퇴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실적은 행장의 평가로 이어지다 보니 경영진이 다소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경기침체기에 명예퇴직으로만 이를 대응하려고 한다면 근본적인 해법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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