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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일단 현금 쌓고 보자"

[기업·은행 현금확보 비상]<br>은행, 달러는 갚아야 하고… 조달은 여의치 않고…


국내 은행들이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은 가뜩이나 외국계 은행의 차입금 회수로 외화자금사정이 빠듯한 터에 미 상업은행 부도 등 제2 글로벌 금융위기설까지 불거지면서 그야말로 외화대란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당장 현금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은행권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사실상 글로벌 본드 발행 등 외화 차입선이 막혀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국계 은행이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갈수록 외화 유동성이 빠듯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의 20억달러 달러스와프 경쟁입찰에 2배가 넘는 40억달러가 응찰한 것은 금융권의 외화자금난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 차입금 상환 압박 지속=신한은행이 1월 유로CP(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발행하는 단기 CP) 발행 등을 통해 9억달러를 조달하는 등 은행권은 올들어 90억달러를 조달하는 등 나름대로 외화 조달에 숨통이 트여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아 외화사정은 갈수록 쪼들리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인 지난해 10월부터 외국계 은행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로 12월까지 3개월간 무려 440억달러의 단기 차입금이 회수됐고 올들어 1월에도 100억달러 안팎이 빠져나갔다. 이처럼 단기 차입금은 물밀 듯 빠져나가고 있지만 1년 이상 장기 차입금도 사실상 유입되지 않고 있다. 장기 차입금은 지난해 11월 8억5,000만달러가 유입됐지만 12월에 다시 5,700만달러로 급감했다. 시중은행은 리먼 사태 이후 3~5년 이상의 장기 글로벌 본드 시장 노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한국은행이 달러스와프 경쟁입찰 방식으로 지난해 10월부터 135억달러를 풀었지만 이는 대부분 은행권의 단기 외화 차입금 상환용으로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긴급 달러 자금으로 간신히 단기 부채를 상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외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모 방식이 아닌 공모 형식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호전돼 장기 본드를 발행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1~3개월 단기 차입이나 길어야 1년짜리 차입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계속해서 만기가 돌아오며 ‘언 발에 오줌누기’식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함께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일본계 은행들이 3월 회계 결산일을 앞두고 대규모 자금회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은 현금 사재기 가속화=대기업은 경기 빙하기에 대비, 현금확보를 위해 잇달아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이 2월 한달 동안 발행했거나 발행 예정인 회사채 규모는 약 4조2,250억원으로 지난해 말(1조8,480억원)보다 3배가량 급증했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경기침체 및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파격적인 정책금리 인하에 힘입어 채권 발행비용이 크게 떨어진 것도 회사채 발행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A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2차 위기에 대한 경고에 따라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지난해부터 사내에 유보한 현금을 최대한 지키는 쪽으로 자금운용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J와 CJ홈쇼핑ㆍCJ제일제당ㆍCJ CGV 등 CJ그룹 계열사들은 이달 중 총 3,1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삼성물산도 이달 중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의 회사채 발행은 2004년 12월(2,000억원) 이후 처음이다. 정부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건설과 조선ㆍ해운사들의 회사채 발행도 이어지고 있다. 정희철 KIS채권평가 연구원은 “최근 전반적인 금리상승에도 불구하고 회사채가 유례없는 유통량을 기록하고 있다”며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채권 매입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량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가 크게 감소한 것도 회사채 발행 증가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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