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丙戌)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도 은행권에서는 ▦론스타와 국민은행 사이의 외환은행 매각 협상과 계약 파기 ▦신한은행과 조흥은행간 통합작업 ▦은행권의 해외 진출 가속화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등 굵직한 사건들이 터져나왔다. 그런 가운데 은행장들도 올해 말의 성찬을 쏟아냈다. 은행권을 이끌어간 ‘수장’들의 말을 통해 한해를 돌아봤다. ◇인수전 승자와 패자=올 한해 은행권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국민은행과 론스타간 외환은행 매각 협상 과정이다. 지난 3월 국민은행은 하나금융과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제치고 외환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뱅크’로 한발 다가서는 듯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4월 조회사에서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국내영업과 해외영업 강자간의 결합, 개인금융과 기업금융 강자간의 결합”이라며 “뿌리와 뿌리를 접붙여 기반을 넓히고 역량을 더욱 키우고자 하는 새로운 의미의 통합”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그러나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길은 순탄치 않았다. 감사원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감사 중간 발표를 시작으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결국 11월23일 론스타가 전격적으로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이후 12월 강 행장의 조회사는 결의에 차 있다. 강 행장은 “국민은행은 자체 역량만으로도 해외진출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며 “정도(正道)를 통해 ‘아시아를 선도하는 글로벌 뱅크’로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갈 것을 확신한다”고 직원들을 북돋웠다. 반면 신한은행은 조흥은행과의 성공적 통합 실현,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인수로 위상을 키우는 데 성공을 거뒀다. 4월1일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 출범식에서 신상훈 신한은행장의 취임 일성은 더욱 커진 신한은행의 자신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 행장은 “통합은행은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당당히 겨루는 대한민국 금융의 에이스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통합 신한은행이 나아갈 길을 과거 아시아를 세계 무대로 확장시켰던 실크로드에 견줘 골드로드(Gold Road)로 명명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이 촉각을 기울였던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의 품으로 들어갔다. LG카드를 놓고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지주ㆍ농협중앙회 등 국내 금융기관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외국계 자본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바클레이즈 등 6곳이 각축을 벌였으나 결국 신한지주는 뒷심을 발휘하며 LG카드 인수에 성공했다. 9월1일 신한금융지주의 창립 5주년 기념식에서 이인호 사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서 시장 위상을 갖췄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글로벌 뱅크를 향해=올 한해는 은행들이 경쟁이 치열해진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무대를 확장하는 노력들이 가시화됐다. 국내 최초로 역외 투자은행(IB)을 출범시킨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들이 세계적인 투자은행들과 어깨를 견주는 첫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다. 11월30일 홍콩우리투자은행 출범식에서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홍콩우리투자은행은 한국의 금융사가 세계 투자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을 적극 개척해 우리금융그룹의 새로운 성장엔진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한은행 역시 신 행장이 취임식에서 “좁은 국내시장에서 영토 싸움에 매몰되기보다는 세계시장으로 나가 글로벌 뱅크들과 당당히 경쟁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홍콩에 투자은행(IB)센터를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하나은행 역시 오는 2009년까지 동남아와 중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선도 금융그룹 네크워크’를 구축하고 2015년까지는 ‘아시아기반의 글로벌 금융그룹 네트워크’를 이룩하는 비전을 갖고 해외 시장에 기반을 다지고 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10월 조회에서 “하나은행은 IT와 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이 같은 투자를 통해 금융선진국인 네덜란드의 ING나 ABN암로와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화가 우리가 지향해나갈 목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공기업들 역시 변화의 방향으로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5월 베이징에서 “포화상태에 달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탈피해 국제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양천식 수출입은행장도 10월 국정감사에서 “수은이 해외개발사업에 있어서 국내 어느 은행보다 전문성이 있다고 자부한다”며 수은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세밑을 앞두고 우리은행이 비정규직 직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은행가가 술렁였다. 황영기 우리은행장과 마호웅 노조위원장은 12월20일 정규직 직원의 내년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내년 3월1일부터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황 행장은 “정규직 직원들이 포기한 임금인상분을 재원으로 비정규 직원의 복리ㆍ후생 수준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른 은행권에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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