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사 면접을 봤는데 사장이 '학교를 그 정도 다녔는데 이 정도 스펙이면 실패한 인생 아닌가' '취업 안 하고 결혼하기는 쉬운 줄 아나' 등 인신공격성 질문을 쏟아내더군요.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봐 게시판에 공개합니다."
"K사 연구소에 합격해서 채용검진과 연봉협상까지 끝났는데 사장이 채용을 취소했다고 통보하네요. 이런 회사 절대 가지 맙시다."
최근 '취업뽀개기' '잡플래닛' 등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기업 실명과 함께 올라온 구직자들의 후기들이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하반기 공채 시즌에 돌입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스트레스도 높아지고 있다. 높은 경쟁률로 가뜩이나 취업에 성공하기 어려운 마당에 채용 과정에서의 회사의 크고 작은 '채용 갑질'이나 면접 과정에서의 인신공격성 질문 등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약자인 구직자들이 울분을 삼키며 앉아서 당했다면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사이트에 낱낱이 공유하면서 '을의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모 패션ㆍ유통 기업은 지원자들에게 정치색을 드러내게 하는 인·적성 검사와 면접으로 악명이 높다. 이 기업에 지원했던 한 취준생은 "왜 같이 일할 직원의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지 모르겠고 회사가 원하는 대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상반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최근 공채를 진행한 공기업들 역시 정치적 성향에 관한 면접 질문으로 취준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원자들의 능력이나 외모를 비하하는 면접관들의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또 다른 취준생은 "이력서에 쓴 것보다 키가 작아 보인다, 토익 980점인데 영어 회화가 엉망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었다"며 "가뜩이나 취직이 어려운데 속이 상했다"고 전했다.
구직자들의 폭로로 '채용갑질'이 알려지면서 기업 이미지에 실질적인 타격을 받는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대성에너지·위메이크프라이스 등은 올 들어 구직자들에게 영업을 시키거나 모욕적인 면접을 실시하고도 채용을 취소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회사 대표들이 나서서 공개 사과를 하고 뒷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망가진 기업 이미지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평판 및 위기 관리 컨설팅사 '에이케이스'의 김재은 컨설턴트는 "요즘에는 기업이 한번 논란에 휩싸이면 해당 회사와 관련한 과거의 부정적인 이슈까지 한꺼번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며 "채용 과정에서의 잡음은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취준생들 사이에서 폭발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제는 기업들도 채용 과정을 기업이미지 홍보의 기회로 여기고 구직자들을 배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두산그룹은 면접관들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엄격한 과정을 통해 사내에서 실무 면접관을 선발하고 이들에 대해 2박3일의 별도 교육을 실시하는 등 '면접관 인증제도'가 도입돼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지원자 1인당 총 두 시간이 넘는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면접관은 회사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구직자들에게 피드백을 제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롯데그룹dms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면접 전형별로 지원자의 점수를 매겨 e메일로 피드백을 보내고 있다. 역량 면접, 프레젠테이션 면접, 토론 면접, 임원 면접에서 지원자의 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비교해볼 수 있도록 지원자 평균 점수와 합격자 평균 점수도 첨부해준다. 롯데 관계자는 "지원자가 자신의 강ㆍ약점을 분석해 다음 응시에 도움이 되도록 돕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불합격 통보 메시지에도 신경을 쓴다. "롯데의 채용 과정은 보편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이 아니라 회사별 특성과 지원한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는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원한 분야에 적합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해 불편한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라는 게 메시지의 일부다.
LG전자도 면접자들의 대기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 세심한 시간 안내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면접 순서에 상관없이 일정 시간에 전원이 모이도록 했으나 올해부터는 면접 순서에 맞게 시간을 통지해 30분가량만 기다리도록 했다.
현대차그룹은 6개월 내 어느 그룹사에서 인·적성검사(HMAT)를 응시하더라도 각 그룹사별로 HMAT 결과를 재해석해 채용 전형에 반영한다. 지원자들이 짧은 시간 동일한 시험을 여러 번 응시해야 하는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다.
삼성그룹 역시 면접관으로 들어가는 임직원은 과·차장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사전교육 후 임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아예 외부업체들로부터 면접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인크루트,·사람인 등은 기업들에 면접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면접 프로그램 중에는 면접위원의 역할과 기술뿐만 아니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Do's & Don't's)에 대한 강의도 포함돼 있다. 박영진 인크루트 과장은 "공공기관이나 중소기업들이 면접 노하우 및 매너와 관련한 컨설팅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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