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역사다. 그래서인지 한전이 나주혁신도시에 새 둥지를 틀면서 지역의 기대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한전 역시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빛가람 에너지밸리' 조성 목표도 내놓았다.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걸맞게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일본의 기업도시 도요타시와 같은 첨단 산업혁신단지를 지역에 꾸리겠다는 내용이다. 한전은 광주권의 첨단산업, 동부권의 정보통신(IT), 서남권의 신재생에너지를 연계해 전력산업에 특화된 '글로컬(global+local)' 혁신구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전 입주 이후 지역경기는 꿈틀대고 있다. 한전 신청사 인근의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한전과 같은 큰 기업이 들어선 뒤 확실히 손님이 늘었다"며 앞으로의 매출 증가에 기대감을 표했고 나주에서 15년 넘게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10개 기관 정도가 이전한 것으로 아는데 지역이 벌써 들썩들썩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나주혁신도시 현장은 공사장 분진과 소음으로 황량했지만 곳곳의 식당과 편의점 등 인근 상가는 갑자기 밀려드는 손님에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100개 기업 유치, R&D 매년 100억 투자=빛가람 에너지밸리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 단계다. 과실을 얻기까지는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에너지밸리는 전력기술 기반에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 그리드(소규모 지능형 전력망), 전기차 등 미래 유망 신기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태계 형성이 핵심이다. 실천계획을 하나씩 풀고 있다. 한전은 먼저 기술을 이끌고 있는 에너지기업 100개를 지역에 유치하고 전력산업 관련 산학연 연구개발(R&D)에 연간 1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전은 나주 이전 뒤 기업이전 전담부서인 상생협력처를 새로 신설하고 지원책 마련에 돌입했다. 전라남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원제도에 한전 차원의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전남도는 현재 혁신도시 이전기업에 최대 60억원 한도의 이전비용을 지원하고 있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4년간 50% 감면해주는 등의 세제상 혜택도 있다.
한전은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성과 창출형 컨설팅과 해외 수출 파트너십 인증을 도입하고 신청사에 '중소기업 비즈니스 플라자'도 조성했다. 김숙철 신성장동력본부 SG사업팀장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등의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유치해 이들과 상생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도 통하는 에너지 강소기업을 많이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에너지·IT 융복합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9일 롱텀에볼루션(LTE)을 기반으로 전력과 통신이 결합된 지능형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협약을 KT와 맺은 것이 출발점이다. 크게 △LTE 활용 지능형 전력계량 인프라(AMI) 구축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전력+통신 빅데이터 융합 연구개발 △글로벌 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 등으로 요약되는 에너지·통신 융복합 4대 신사업은 에너지밸리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게 지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 유치-일자리 창출' 기대…넘어야 할 산도 많아=신청사의 도로명 주소는 전력로(빛가람동)55다. 지역의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주시가 혁신도시 이전기관 지정 당시 다른 기관은 몰라도 한전만큼은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는 후문이 떠돌 정도다. 지역민들도 한전의 기업 유치 방침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기업들이 들어선다는 것은 곧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은 유입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인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지역에 돈이 돌기 마련이다. 전력로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아파트와 원룸 임대문의가 최근 부쩍 늘었다"며 "아직은 많은 수의 주택공급이 예정돼 있어 큰 변화는 없지만 이전기관들이 자리를 잡으면 매매가와 월세가 요동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도시 인근이나 도농 복합지역에 들어선 다른 혁신도시들과 달리 한전이 들어선 나주혁신도시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이제 막 공공기관만 이전했을 뿐 많은 수의 기업을 유치하고 정주여건을 제대로 마련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전문가들도 기반시설 마련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봉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자체는 기반시설 관련 예산을 충분히 책정해 집행해야 하고 맞춤형 인센티브도 더 강화해 기업들이 도시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며 "한전 등 이전기관들은 지역인재 채용과 공헌활동을 통해 나주와 호흡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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