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1대 시작한 운송업으로 기반
IFC빌딩·상암월드컵경기장 등 철구조물 제조로 사업영역 넓혀
첫 공기업 민영화 KC인수 승부수… 계열사 10개 거느리며 성공신화
8톤짜리 덤프트럭 한 대로 시작해 1조원 규모의 그룹을 일군 기업인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일감을 더 받기 위해 트럭을 끌고 새벽 2시에 출근했다. 돈 버는 재미에 피곤한 줄 몰랐던 그는 3년 후 트럭을 50대로 늘렸으며 지금은 철강·화학·자동차·물류·건설·에너지 등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한민국 대표 중소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박주봉(58·사진) 대주·KC 회장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기록한 자전적 스토리 '시련이 있어야 성공이 있다'(도서출판 희망)를 펴냈다. 박 회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업가를 꿈꾸게 된 계기, 운명처럼 다가온 창업, 기업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어려움, 진정한 기업가 정신에 대한 신념 등을 담담한 어조로 책 속에 담았다.
박 회장은 지금도 웬만하면 서울 사무소 옆에 자리한 마포옥에서 설렁탕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음식 남기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그는 온 몸에 철저한 근검절약이 배어 있다. 어린 시절 처절한 배고픔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전남 장흥에서 방앗간을 하던 그의 부친은 서울에 올라와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부도를 맞았다.
7남매 중 장남이었던 14살짜리 소년은 학교가 끝나면 구두닦이, 오뎅과 떡볶이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박 회장은 1978년 사업 밑천 200만원으로 8톤 덤프트럭 1대를 구입해 인천항에서 수입한 무연탄을 서울 지역의 연탄 공장에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다른 차량보다 많이 운반했고 돈도 많이 벌면서 3~4년 만에 덤프트럭과 카고트럭을 50대까지 늘리며 운송업에서 첫 성공을 맛봤다. 대주중공업의 전신인 대주개발의 시작이었다.
박 회장은 아예 철근을 생산해서 운반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 철구조물 제조에 뛰어들었다. 1년 후엔 부산의 낙동대교 프로젝트를 따낼 만큼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상암동월드컵경기장·성수대교, 오피스건물 중 서울에서 가장 높은 여의도 IFC빌딩 등 구조물이 박 회장의 손끝에서 이뤄졌다.
책 속에선 그의 승부사절 기질이 빛이 발하는 순간도 자주 목격된다. 외환 위기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쥐어줬다. 대주·KC의 주력 회사 중 하나인 케이씨 인수다. 케이씨 전신인 한국종합화학은 당시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정책 대상 1호였다. 주위에서는 모두 만류했지만 박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소재 생산업체라는 사실 하나를 내세워 전격 인수에 나선다.
물론 인수 이후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노조 파업으로 박 회장은 수개월간 회사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끝없는 설득과 명예퇴직 등을 통해 분규를 해결했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공장 정상화를 이뤘다.
단돈 200만원에서 시작해 1조원 규모의 그룹을 일군 박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그는 책 말미에 "기업가 정신이란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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