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형제간의 낯뜨거운 싸움으로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반(反) 롯데’ 정서가 퍼지고 있다. 대주주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이나 대주주 관련 사건이 기업에 손해를 미치는 ‘오너 리스크’의 전형적인 사례다.
‘오너 리스크’는 국내 증시에서 고질적인 불안 요인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만 해도 한진그룹이 지난해 12월 발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흔들렸다. 당시 유가 하락이라는 호재에 항공주가 급등하던 시기였지만 대한항공은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 고가매입 논란과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시도 등으로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삼성그룹은 최근 경영권 승계에 영향을 주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전쟁을 치렀다. 합병은 성공했지만 양사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롯데그룹주들도 최근 주가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다툼이 알려진 직후에는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확보 경쟁 가능성에 주가가 급등세틀 탔지만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롯데제과는 지난달 29일 장중 최고 219만2,000원까지 치솟았으나 ‘오너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이달 7일에는 장중 174만7,000원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 하락률이 20.30%에 달한다. 롯데칠성 역시 지난달 29일의 고점 238만6천원과 이달 6일의 저점 188만8천원을 비교하면 20.87%나 급락했다. 이밖에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하이마트, 롯데푸드, 롯데손해보험, 현대정보기술 등 롯데 계열 상장사 모두 최근 주가가 약세 흐름을 나타냈다. 증권사들은 롯데쇼핑 등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조정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실적 부진과 오너 리스크를 반영해 목표주가를 종전 27만원에서 25만원으로 내렸다. 대신증권은 롯데쇼핑 목표주가를 기존 33만원에서 27만5,000원으로 낮췄다.
‘오너 리스크’는 한국 증시가 주요국에 견줘 제값을 못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으로 과거에는 북한과의 대치 등 지정학적 요인이 꼽혔지만 최근에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낮은 배당수익률 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유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지며 주주친화 정책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이번 롯데 사태는 여전히 후진적인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최근 코스피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증시 하락세의 궁극적인 이유는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 때문이며 여기에는 지배구조에 대한 실망도 포함된다”며 “하락 국면에서 지수를 방어하던 연기금도 최근에는 매도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언론과 투자자들의 시선도 따갑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7일 족벌 기업의 승계 분쟁이 한국에서 특히 빈번하고 해로운 형태로 나타났다며 롯데가의 이번 경영권 분쟁 내용을 소개했다. 포브스도 지난 3일 한국인들이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에 익숙하며 이것만큼 관심을 사로잡는 것도 없다면서 이번 롯데가의 사례를 전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있는 근본 원인이 북한의 위협보다는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지적도 했다.
‘오너 리스크’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곪을대로 곪은 재벌 문제가 한국의 자본시장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상식에서 벗어난 재벌 문제가 기업은 물론 시장과 감독 당국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한다”며 “이는 증시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요소로, 자본시장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시장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며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면서 “기업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 가치를 높여야 하며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가 수동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주식만 사고팔 게 아니라 비공개 대화 등 ‘주주 관여(engagement)’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 역시 “금융위원회가 주주 관여의 원칙과 절차를 정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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