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소재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에번스 리비어 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과 관련, “한국 기업들이 미 기업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미 의회를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방안에 대해 김영만 주미상공회의소(코참) 고문도 동감을 표시했다. 리비어 회장과 김 고문은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리비어 회장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 창간 47주년 특별좌담에서 양국 정치상황과 맞물려 FTA 비준이 늦어질 것이라는 데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논의했다. ▦김영만 주미상공회의소 고문=한미 FTA가 양국 경제발전은 물론 한미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기대되지만, 양국의 의회의 반대에 부딪쳐 있습니다. 미국 의회의 FTA 비준 전망을 어떻습니까. ▦에번스 리비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국은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양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에도 정치 이슈에 갇혀버린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미 행정부는 FTA에 따른 수많은 이익에 대해 의회는 물론 미국인에게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리비어=두 나라는 앞으로 정치의 계절로 들어가기 때문에 의회 비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올해 대선을 치르는 한국이 국회 비준을 먼저 하는 것이 FTA를 발효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에 이어 1년 뒤 대선을 치르는 워싱턴을 압박할 수 있지요. 한국보다는 미국 의회가 FTA 문제에 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또 한국 정부는 국회가 FTA를 통과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비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기가 올해일지 내년 초일지 장담하지 못합니다만 대선 이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미국 기업으로 하여금 FTA가 양국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미 의회를 설득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 특히 한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과 의회를 움직일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김=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움직여 미 의회를 압박하라는 것은 좋은 지적입니다. 한국에도 반대여론이 적지않습니다. 미국과 자유무역을 해서 잘살 수 있을까를 우려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호를 닫아놓고 톱이 되겠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비준이 미국에서 더 어렵다는 데는 공감합니다. 그래서 청와대가 정치적 현안에서 손을 떼고 FTA 통과 등 국정 마무리 과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정치에 발을 담근 채 국회에 FTA를 통과시켜달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지요. ▦김=한국에는 지금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선진국과의 경쟁에서도 밀린다는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외형상 경제지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위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리비어=많은 한국인들은 한국 경제를 다소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지난 1969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 ‘독재 때문에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현재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어떤 이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인 스스로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일궈냈지 않았습니까. 외환위기 극복도 마찬가지지요. ▦김=‘비관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은데요. 샌드위치 위기론은 한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키워온 산업을 스스로 버린 것이지요. 70년대 화학ㆍ조선ㆍ철강 등 중화학 육성을 위해 ‘탈섬유’를 외친 것은 잘못입니다. 기존의 산업을 대체하지 말고 신산업을 추가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가격 경쟁력이 뒤처진다고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포기하지 말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에 신산업 육성 못지않게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코카콜라와 프록터&갬블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지만 지금의 한국적 시작에서 보면 ‘사양산업’일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섬유산업이 건재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김=한미 동맹관계로 화제를 돌립시다. 양국은 북핵 문제 등에 대한 접근방식이 달라 최근 몇 년간의 관계가 과거 같지 않았는데요. 한미간의 신뢰성마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다행히 부시 행정부가 일방통행식 외교정책을 다소 수정하고 참여정부도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체결에 나서면서 이런 불안감은 해소됐다고 봅니다. 한국으로서는 한미관계에서 외교정책과 국익에 최우선을 둬야 합니다. ▦리비어=사실 지난 6년간 양국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른바 ‘악의 축’ 발언은 한국인에게 적지않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국관계가 보다 좋은 상황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미국도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었고, 그 결과 대화를 통한 해결방법, 즉 6자 회담이 성사된 것이지요. 한미 FTA는 50여년 전 한미방위조약 체결 이후 한미관계에 신기원을 이뤘습니다. ▦김=한국과 미국은 올해와 내년에 각각 대선을 치릅니다. 양국 대선이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리비어=선거 이후 양국의 정치지형은 많이 바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양국관계의 중요성이 선거 결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출범 직후 많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에 추진해온 사안들을 폐기해버렸지요. 전 정부가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점은 어떤 정책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롭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그 정책을 폐기하지 않고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리비어 회장은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고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를 직접 다룬 경험도 있는데 앞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관계에도 극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리비어=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한 자세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과거 한반도와 북핵 문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05년 ‘9ㆍ19베이징합의’는 단 하루 만에 어긋나 2년을 허비했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무엇보다도 투명성이 유지돼야 하고 한미 양국이 매우 솔직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북한과의 공개적인 대화 통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이슈는 공개적으로 낙관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낙관론도 금물입니다. 리비어 회장은 1949년 뉴욕에서 출생해 프린스턴대학을 다니다 주한 미 공군(오산)에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한반도 전문가. 미 노동부를 거쳐 79년부터 25년간 국무부에서 일해온 베테랑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국무부 한국과장(98~2000), 주한 미대사관 부대사(2000~2003), 국무부 일본과장(2004) 등을 거쳐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등을 지냈다. 김영만 고문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30년가량 미국에서 활동한 재미 경제인. 93년 재미상공회의소(코참)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고 97년 초 코참 회장에 취임, 외환위기 시기에 미국의 동향을 본국에 전달하고 한국과 월가를 연결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한국은행을 거쳐 SK그룹 미주지역본부 사장ㆍ부회장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미 동부에 거점을 둔 로아은행 이사회 회장 및 코참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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