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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2주년] 기업 체질강화등 갈길 아직 멀다
입력1999-11-21 00:00:00
수정
1999.11.21 00:00:00
안의식 기자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등으로 이제 우리도 본격적인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한 순간, 동남아의 위기가 들려왔다. 태국이 무너졌고 이어 인도네시아가 손을 들면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우리는 「설마 우리가…」였다.당시 경제팀은 그 유명한 「펀더멘탈」을 강조했다. 한보에 이어 삼미, 진로, 대농, 기아가 줄줄이 무너져 나가면서도 우리는 동남아와 다를 것으로 믿었다.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어_어_」하는 사이 우리는 IMF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그 다음은 「급전직하」였다.
11~13%대의 금리가 하루아침에 3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상승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사두면 「당연히」오른다던 아파트값도 바닥을 모른채 떨어지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던 은행폐쇄가 현실화됐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직원들의 복지를 책임지겠다던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기 시작했다.
IMF 구제금융신청(97년11월21일) 2년후, 모든 상황은 반전됐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 우리는 총 대외채무보다 전체 대외채권이 많은 순채권국이 됐다. 98년2·4분기 마이너스 7.2%를 기록했던 경제성장율(GDP)은 올 하반기 10%선을 넘어섰다.
주가, 환율, 금리, 물가, 수출, 경상수지 흑자등 모든 거시지표가 완전히 정상궤도에 들어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체제 극복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여겨지던 대우그룹 과 투신사 처리도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원만히 정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나. 결국은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적 합의 때문이였다. 노동자들은 봉급이 절반으로 깍이고 거리로 내 몰리면서도 우리 모두의 밥통을 깨지 않기 위해 참아냈다.
기업주들 역시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金昇淵 한화그룹 회장)」으로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오늘을 견뎌냈다. 위기에는 강한 이같은 「한국민의 힘」은 적절한 국가지도력과 결합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냈다. 미국의 지속적인 호황 등 대외여건 역시 위기극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겨나 거리에 나 앉았다. 국가는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을 위해 나라돈을 무더기로 투입해 빚더미에 오르게 됐다. 위기상황이 오히려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테크의 최대 호기가 되면서 빈부격차는 역으로 커졌다.
이같은 대가는 뒤집어 살펴보면 앞으로의 과제가 된다. 국가재정의 건전성 확립, 빈부격차 축소,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확실한 마무리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최근 경기가 과열을 우려할 정도도 지나치게 급속히 호전되면서 물가불안등 「위기의 싹」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李根京 재정경제부 차관보)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대응도 필요하다.
안의식기자ESA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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