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원화 강세가 주식시장의 걸림돌로 떠올랐다. 자동차·정보기술(IT) 등 수출주들이 원화강세 여파로 주춤해진 가운데 환율이 코스피지수 1,700포인트선 안착의 장애물로 등장했다. 증시가 조만간 본격적인 실적시즌에 돌입하는 만큼 원화 강세는 앞으로 기업이익에 대한 기대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원화 강세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에너지·철강·은행 업종은 긍정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환율 급락하며 주식시장 발목 잡아=11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4포인트(0.07%) 하락한 1,694.12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지수는 한때 1,700포인트선을 돌파했으나 원·달러 환율이 장중 1,120원선 밑으로 내려간 여파로 수출주들이 떨어지자 하락세로 반전했다. 환율 하락 속도가 너무 가팔라 국내 기업들의 해외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악재로 부각됐다. 외국인들이 올 들어 처음으로 1,60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피지수 1,700포이트선 돌파 후 안착을 시도하던 증시가 원화 강세를 만나 고전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국내 IT 및 자동차 기업들의 주요 경쟁상대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에서 원화가 달러뿐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원·엔 환율도 전 거래일보다 0.49% 하락했다. 특히 이번주부터 국내 증시가 2009년 4·4분기 실적시즌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원화 강세가 더 지속될 경우 올 1·4분기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화 강세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출 경쟁력 악화라는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어 증시로서는 악재"라고 밝혔다. ◇자동차 이어 IT도 원화강세 후폭풍=환율 급락은 자동차와 IT 등 수출주 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IT에 비해 가격경쟁력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업종은 새해를 맞이하면서부터 이미 환율 하락 여파로 고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4.25% 하락한 것을 포함해 올 들어 지난 4일부터 18%나 급락했다. 그동안 환율 하락에도 비교적 꼿꼿한 움직임을 보였던 IT 관련주들도 이날은 환율 급락여파로 힘없이 무너졌다.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순매도를 보이면서 삼성전자가 2.92% 하락했고 LG디스플레이와 하이닉스도 각각 4.58%, 2.64% 떨어졌다. IT는 독보적인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이끈다는 점에서 자동차에 비해 환율 민감도는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정도까지 떨어질 경우 기업이익을 하향 조정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곽병열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화가 달러뿐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환율이 지금처럼 빠르게 떨어지면 IT와 자동차 등의 실적도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철강·은행 업종은 수혜 기대감=환율 급락이 은행과 철강·에너지 업종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철강ㆍ전기가스ㆍ은행업종지수가 전일에 비해 2% 안팎의 급등세를 보였다. 포스코와 한국전력이 3.14%, 3.25% 급등했고 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 등도 6%가량 크게 올랐다. 환율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가격이 떨어지고 자본조달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시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업종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주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 흐름을 감안할 때 에너지나 통신ㆍ철강업종 등에 대한 단기적으로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도 "원화 강세 시점에서 은행업은 외화 조달비용의 하락이 예상되고 외국인의 관심이 수출주에서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경우 가장 먼저 손길을 뻗칠 수 있는 업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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