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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인이 SK그룹 공채 합격
입력2003-01-09 00:00:00
수정
2003.01.09 00:00:00
손철 기자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 SK그룹 공채에 합격했다.
9일 SK에 따르면 정훈기(28)씨는 지난해 말 실시된 SK그룹의 신입사원 공채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스템통합 업체인 SK C&C에 합격, 지난 2일부터 사내 연수를 받고 있다.
이미 9년전 `뇌성마비 최초 서울대생`이란 타이틀로 유명세를 탔던 정씨지만 정작 대학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야 했다.
지난 94년 서울대 임산공학과에 입학, 98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중증장애인에게 대기업 취업관문은 바늘구멍보다 더 좁았다.
졸업 직후 작은 벤처회사에서 6개월 동안 업무보조를 할 수 있었을 뿐 그를 정식으로 채용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정씨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을 나왔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에 들어가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한동안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회고했다.
한동안 외환위기 직후의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졸업한 탓이려니 했지만 언제까지나 환경 탓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99년 봄부터 1년간 일본재활협회에서 실시하는 `더스킨 아시아태평양 장애인리더 육성사업`에 한국 대표1기 연수생으로 참가했다.
그리곤 일본국립재활센터에서 시각, 청각, 소아마비 등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4명의 아시아인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한 경험을 담아 2000년 12월 `도전만이 희망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 이듬해에는 샐러리맨의 일상을 그린 일본 만화 `시마과장`의 작가인 히로카네 켄시가 쓴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원칙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샐러리맨의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된다.
`20대에 대기업 면접까지 간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그는 결국 졸업 5년만에 대기업 취업이라는 꿈을 이뤄냈다.
정씨는 “SK그룹 합격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성인식을 치른 기분이었다. 그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찾지 못해 주위 분들께 면목이 없었는데 이제 그분들의 염려를 덜어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동기생들과 함께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는 정씨는 “고령사회가 되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아질텐데, 장애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IT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철기자 runir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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