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기업 가운데 일부 업체들이 본업과 무관한 '부동산 재테크'에 나서면서 도전과 개척의 '벤처 정신'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벤처업계 등에 따르면 경기 침체의 와중에도 많은 벤처 기업들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일부업체의 경우는 유휴 부동산을 활용키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상당수는 기업의 성장동력을 찾기보다는 비생산적인 부동산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곧 벤처기업들이 지금껏 비판해온 기존 일반 기업들의 경영 행태를 되풀이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최근 부동산 투자로 성과를 기록한 사례로는 의료 솔루션 업체인 비트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비트컴퓨터는 지난 2000년 철도청과 함께 민자 역사 건립을 위한 사업주체 비트플렉스를 설립,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왕십리 민자 역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총 27억원(26.45%)을 투자, 현재 비트플렉스의 최대주주다. 역사가 완공되면 비트컴퓨터는 자산 규모가 약 1600억원의 자회사 비트플렉스를 얻게 된다. 하지만 비트컴퓨터가 본업에서 거둔 실적은 너무 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2001년 이후 16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 이후 올해까지 적자를 벗어난 것은 지난해(1억원 흑자)가 유일하다. EMR(전자의료기록시스템) 등의 해외 진출과 바이오기업(굿젠) 투자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 것. 올해의 경우도 IT업계 구조조정의 가속화로 저가 수주가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반기까지 13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처럼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어들인 업체들이 알려지면서 벤처 기업들의 부동산외도는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만을 놓고 보더라도 올 들어 지난 10월 4일까지 부동산 관련 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기업은 무려 83개사에 달한다. 코스닥 상장 기업 전체 개수가 900여개사임을 감안하면 10%에 가까운 기업이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댄다는 뜻이다. 올해까지 3년째 적자를 내고 있는 방송수신기제조업체인 한단정보통신는 지난 5월 부동산매매ㆍ임대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고, 올 반기까지 78억원의 손실을 본 소프트웨어업체인 씨오텍도 9월 들어 부동산 진출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LCD장비제조업체인 태화일렉트론의 경우 지난 9월 부동산시행ㆍ시공ㆍ분양업을 비롯해 바이오ㆍ재생에너지 등 무려 18개 사업을 새로 추가했다. 몰론 부동산 사업 진출을 무조건 백안시할 수는 없다. 지난해 부동산사업에 뛰어든 전자축전기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놀리게 된 설비를 임대했다"며 "제조업 활동에 수반되는 공장이나 토지 등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대다수 벤처 기업인은 사업 다각화를 내건 무분별한 부동산 외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영업 손실을 부동산 사업으로 만회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여윳돈이 있는 경우 담보 성격의 부동산 투자를 나쁘게 만은 볼 수 없지만, 기술력으로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하는 벤처로서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유선통신기기업체를 운용하고 있는 모 업체 사장은 "이런 현상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들어가야 할 돈이 부동산에 기웃거리는 거 아니냐"며 "쉽게 돈을 벌려고 하다보면 본업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