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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언덕 없는 한국증시] 기업실적·정책 버팀목 실종… 체력 떨어져 대외변수에 취약

美 출구전략·저유가 후폭풍 악재에 휘청

엔저로 시총 상위권 기업들마저 영업익 뚝

세제 혜택 빠져 '초이노믹스'도 약발 안먹혀

증권사 객장을 찾은 한 투자자의 뒷모습에서 한국 증시의 고민이 전해진다. 올해는 한국 증시가 기초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대외변수에 얼마나 취약한지 절감한 한 해였다. /=연합뉴스


올해 한국 증시는 기업들의 실적부진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 실패로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마땅한 버팀목이 없는 가운데 미국·일본·중국·유럽 등 사방에서 불어오는 각종 대외악재에 크게 흔들렸다.

한국 증시를 이끄는 대형 수출주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연초부터 심화하기 시작한 엔저 현상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전자·자동차 등의 업종이 엔화약세로 가격경쟁력을 잃고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9월 중순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임박하면서 나타난 달러강세 현상은 한국 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엑소더스(대탈출)로 이어졌다. 여기에 중국 경제가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것도 올 한 해 내내 코스피 상승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말 들어서는 부진한 수요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CE)가 원유를 감산하지 않기로 하면서 유가가 급락해 발목이 잡혔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는 각종 대외변수로 유난히 환율 변동성이 컸다"며 "연초에는 원화절상이 심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컸고 하반기 들어서는 달러강세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에도 타격을 줬다"고 설명했다.

올 한 해 해외발 악재가 끊이지 않았던 가운데 증시 체력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특히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005930)의 실적부진이 뼈아팠다.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영업이익 8조4,888억원을 기록했지만 2·4분기에는 7조1,873억원으로 감소했고 3·4분기에는 4조605억원으로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기준 영업이익이 5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1년 4·4분기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올 4·4분기 영업이익도 4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가총액 2위인 현대차(005380)는 엔저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의 올 3·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한 1조6,487억원에 그쳤다. 2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한국증시의 '원투펀치'를 제외한 다른 상장사들의 실적도 시간이 갈수록 부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488개사의 3·4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2.4%나 줄었다. 올 2·4분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한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22% 증가했지만 3·4분기 들어 성장세가 꺾여버린 것이다. 특히 중국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전기전자·운수장비·화학·기계·철강금속 업종이 부진했다. 운수장비 업종의 올 3·4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60.7% 줄어 반토막 이상 줄었다. 기계(-25.64%), 화학(-23.78%), 전기전자(-12.07%), 철강금속(-7.23%)도 실적이 급감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증시의 가치를 매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라며 "기업실적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의 경기둔화와 엔저가 한국 증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중국의 경기가 부진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됐다"며 "엔화약세로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전자 등 수출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익성도 함께 악화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효과 실종도 증시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코스피는 지난 7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배당확대 등 증시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로 지난 7월30일 2,082.61포인트까지 뛰어올라 3년 만에 2,100선 돌파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경기 활성화를 위한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증시 활성화 대책에 세금감면이 빠지면서 '초이노믹스' 효과는 불과 두 달 만에 사그라들었다.



김 팀장은 "7~8월 '초이노믹스'에 대한 기대로 한국 증시가 연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며 박스권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정책의 힘이 약해지면서 증시도 약세로 돌아섰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 증시가 좋았던 나라들에 비하면 정책 효과가 약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곽 연구원도 "증시 활성화를 위한 핵심인 주식 거래세 인하가 대책에서 빠지면서 시장의 실망감이 컸다"며 "활성화 대책이 나온 11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증시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주주친화 정책 탓에 한국 증시의 자체 체력을 키우지 못한 것도 부진의 한 원인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2013년 한국 기업들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값)은 주요20개국(G20) 평균인 2.8%에 한참 못 미치는 1.1%에 불과했다. 미국 1.9%, 일본 1.6%, 중국은 3.3%였다. 상장사들은 이외에도 자사주 매입, 액면분할 등 주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만 배당은 올해를 기점으로 내년부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일 삼성전자가 내년 배당금을 올해 대비 30~50%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대표적. 이도훈 CIM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결정 이후 해외투자가들로부터 한국 기업들의 배당 정책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현대차의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고가 인수 이후 국내 기업들에 대한 해외투자가들의 곱지 않았던 시선이 다시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약한 증시에 투자하기는 부담스럽고 기준금리 인하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단기간 투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모주 투자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삼성SDS·제일모직 등 일부 기업들의 공모청약 때는 과열 양상까지 나타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자금들은 대부분 상장 첫날 빠져 나가고 다시 공모주 투자자금으로 전환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하종원 한국거래소 상장유치부 부장은 "증시가 부진할수록 갈 곳 없는 자금들이 공모주로 쏠리는 현상이 강해진다"며 "주식투자 수익률이 리스크에 비해 높지 않고 시중금리도 낮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자금이 공모주 시장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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