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를 발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내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를 넘길 정도로 외환 수급 상황이 넉넉한 데다 정부가 외평채를 앞세워 기업들의 외화자금 도입을 유인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일 "현재로서는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외화를 공급할 요인이 없다고 본다"며 "올해 중 외평채 발행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외평채 발행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특별히 검토하지 않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국회에서 20억달러의 올해 한도액을 허가 받으면서 지표거래의 연속성과 시장에 물량을 공급하다는 상징성 차원에서 소규모라도 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초 1,150원대로 출발한 원ㆍ달러 환율은 지난달 30일 1,182원70전으로 마감, 7개월 사이 변동성이 30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외환시장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굳이 외평채를 찍어낼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또 외환보유고가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다 외화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외은지점을 규제할 정도로 정부가 외화 사정에 자신을 보이고 있는 것도 외평채 발행 포기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외평채를 발행하지 않음으로써 원ㆍ달러 환율이 다소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현재로서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론적으로는 외평채를 발행하면 시장에 달러 공급이 풍부해져 환율이 떨어지고 이는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유리하고 물가안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 외화 유동성이 충분해 추세적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굳이 외평채를 발행할 경우 자칫 '친서민ㆍ친중소기업' 기조를 위해 인위적으로 매크로 지표를 건드린다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외환시장의 한 참가자는 "정부가 외은지점 선물환 규제를 할 정도로 시장 유동성에 자신 있는 상황에서 외평채 발행에 나설 경우 물가를 위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3년 이후 매년 10억달러씩 외평채를 발행하다 2007년에는 찍지 않았고 2008년에는 발행에 도전했다 금리가 갑자기 뛰어 포기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60억달러 한도 중 상반기에 30억달러 어치를 발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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