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초년병이었던 시절까지도 김정태 하나금융회장 내정자는 당시만 해도 '첨단무기'였던 주판알을 다루는 데 젬병이었다. '왕손'으로 불릴 만큼 손가락이 굵어 주판을 잘 튕기지 못했다. 계산은 오류가 나기 일쑤였다. 주판 앞에서 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김정태 행원을 여직원들은 짬을 내 도와줬다. 그는 당시 여직원들이 베풀어주었던 배려와 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은행원 중 주판실력은 꼴찌였던 그가 한국 금융회사를 대표하는 회장이 됐다. 김 내정자가 소통과 화합을 경영철학의 1순위로 삼고 있는 것은 행원 시절의 아득한 추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는 영업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의 노하우와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은행원들은 아파트를 가가호호 방문하는 영업방식을 고집했지만 그는 가장 먼저 아파트 수위실을 찾았다.
소주와 담배를 사 들고 수위아저씨들이랑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별난 놈이 왔다'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던 수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김 행원의 진심과 정성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고급 '신상정보'가 술술 다 나온 것은 물론이다. 김 행원은 고급 정보를 이용해 아파트 고객들을 공략했고 이는 그를 영업의 달인으로 만드는 마술이 됐다. 결전을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결전에 나선 것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김 행장은 지난 2008년 은행장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방 앞에 '조이 투게더(Joy Together)'라는 팻말을 붙였다. '누구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오라'는 뜻으로 본인의 이름 영문 이니셜인 'JT'를 자신의 리더십에 빗대 맛깔스럽게 풀이한 것이다. 펀(fun) 경영으로 집약되는 '형님 리더십'을 발휘해 직원들의 맘을 사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김 내정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업통이자 소통경영의 강자다. 평소 화통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친화력이 좋고 직원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27일 내정자로 확정된 후에도 "권위주의적 리더가 아닌 '헬퍼(helper)'가 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리더로서 방향을 제시해주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소탈한 면모는 올 첫 출근일인 1월2일 본점에서 인기 개그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감사합니다'를 따라 하며 직원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 대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대투증권 사장으로 부임하고 맞은 첫 사내 체육대회에서는 임원들에게 "망가지라"고 주문하며 2,000명이나 되는 직원들 앞에서 각설이 분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김 내정자는 은행원 생활 32년의 대부분을 영업 현장에서 뛰었다. 하나대투증권에서는 강력한 영업 드라이브를 걸어 '제2의 도약'을 이끌어냈다.
1952년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 내정자는 1981년 서울은행에서 뱅커 생활을 시작해 신한은행을 거쳐 1992년 하나금융과 연을 맺었다. 이후 하나금융지주 부사장과 하나대투증권 사장을 거쳐 2008년부터 하나은행장으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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