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 체결을 앞둔 지난 2003년 포도 농가에는 '괴담'이 돌았다. FTA로 칠레의 포도가 국내 시장에 수입되면 포도 농가가 전멸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하지만 칠레와의 FTA 체결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포도 농가의 소득은 오히려 늘었다. 1,000㎡당 연간 소득은 2003년 225만원에서 2012년에는 435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더구나 칠레산 포도 수입 시기가 국내 포도가 수확되지 않는 시기에 몰려 있어 국내 농가 영향도 우려와 달리 크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가 FTA 대열에 들어선 지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농가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는 다행히 기우에 그치고 있다. 쌀 등 초민감 품목이 FTA에서 제외된 탓도 있지만 수입이 허용된 쇠고기·돼지고기 시장만 보더라도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 지금까지 FTA 피해보전 직불금이 발동된 품목이 송아지 1건에 불과한 점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제는 앞으로다. 우선 쇠고기·돼지고기 시장이 본격적인 관세 인하의 영향권에 들어선다. 포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쇠고기는 미국·호주·뉴질랜드 등과 향후 15년간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2027년부터는 미국산을 시작으로 관세가 완전 철폐된다. 쇠고기는 그나마 '한우'라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사정이 다르다. 국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아 농가의 위기감이 크다. 돼지고기 관세는 향후 10년간 단계 철폐된다.
쌀 개방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1993년 우루과이(UR) 협정 이후 두 차례의 과세화 유예를 받은 우리나라는 올해 말까지 관세화(개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쌀 관세화를 미룬 대신 최소시장접근(MMA)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바람에 한 해 쌀 수입액은 국내 생산량의 10%인 40만8,000톤에 달한다. 쌀 시장 개방을 또 늦추면 의무수입량은 더 늘어난다. 먹지도 않을 쌀을 의무 수입하기보다는 차라리 개방하는 게 득이 더 많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쌀 시장 개방을 선택한다면 개방 파고에 맞서도록 우리 쌀의 고급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중 FTA는 쇠고기·돼지고기뿐 아니라 국내 밭작물에 큰 피해를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배추·고추·마늘 등 밭작물의 경우 우리나라와 중국의 생산품목이 대부분 겹친다. 일부 밭작물의 경우 현재 중국 수입물량에 대한 관세가 수백%에 이르는 것도 적지 않아 관세가 인하 내지 철폐되면 대규모 피해가 불가피하다. 김덕호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 "민감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수산물 피해도 우려된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산물 교역 대상국이다. 중국 수입물량은 연 10억달러 안팎으로 국내 총 수입물량의 30%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민감 품목은 조기·낙지·갈치 등 서해 어종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우리와 서해어장을 공유하는 중국과의 FTA는 사실상 수산물 분야의 첫 FTA와 다름없다"며 "평균 18% 정도인 중국산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 타격이 적지 않은 만큼 피해보전직불금·폐업지원금 지급 요건과 금액을 현실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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