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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시내 중심에서 MRT를 25분쯤 타고가면 대표적 주거단지인 앙모키오(Ang Mo Kio)역에 도착한다.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앙모키오역 주변엔 대형 할인마트부터 노점상까지 없는 게 없다. 금융기관의 자동화점포까지 모두 갖춰져 있다 보니 사실상 싱가포르 시내의 축소판이다. 이 곳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택시기사 마호니오 알리씨는 “작지만 아파트가 있고 생활기반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 교육비를 빼고 생활하는데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활짝 웃었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에서 인건비도 가장 비싸고 생활비 역시 많이 든다고 생각해왔던 이방인에겐 믿기 힘든 얘기였지만 싱가포르가 저비용 사회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싱가포르인의 비용을 낮추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주택정책이다. 철저한 공공주택정책과 저소득층을 배려한 주택공급, 주택개발청(HDB)의 강력한 통제, 체계적인 주택금융제도는 싱가포르를 저비용 사회로 만들었다. HDB의 아파트는 싱가포르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전체 주택 건설물량의 95% 정도를 공공부문에서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HDB는 수요자의 소득수준에 맞는 주택을 공급하고 언제든지 소득수준이 상승하면 그 수준에 맞는 새로운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월평균소득 4,000싱가포르달러(250만원)이하의 계층에 대해서는 임대주택까지 나눠준다. 공공주택 구입자가 이사할 경우 주택개발청이 환매권을 가지기 때문에 주택을 대상으로 한 투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공공주택 입주자는 주택가격의 80%까지 HDB로부터 최장 20년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를 저비용 사회로 만드는 또 하나의 동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쉽게 말해 해고가 쉽다는 것이다. 한달전에 해고통지를 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당일날 해고를 통보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해고가 쉽지만 눈높이만 낮춘다면 직장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싱가포르의 노동인력은 교육과 기술수준에 따라 명확하게 급여체계가 구분된다. 교육체계 자체가 엘리트 위주로 이뤄져 소수의 엘리트만이 대학을 진학하고 나머지는 풍부한 일반직원으로 외국기업에 공급된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젊은이라도 외국기업들에겐 환영이다. 일단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춘 데다 일찍부터 몸에 밴 서구식 사고방식은 현지 외국기업의 중간관리자로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변동승 LG전자 싱가포르법인장(상무)은 “현지직원중 대부분이 50달러라도 더 준다면 당장 회사를 옮길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우리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면 직원을 줄이고 사정이 좋으면 늘리는 탄력적인 인력 채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인력간 자유로운 교환이 바로 국가 전체의 비용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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