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됐을것""金회장 만날때마다 딴소리·터무니없는 요구 많아""청와대는 대기업 빅딜 독려만 했지 직접개입 안해""IMF졸업 조기 선언, 소비심리 회복위해 불가피"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이재철기자 humming@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관련기사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이규성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수습능력"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김우중 회장을 만나기 위해 힐튼호텔을 찾아간 것만 20번이 넘는다. 대우를 살리기 위해 힐튼호텔이든, 교보생명 주식이든 팔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모든걸 외면했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말이 달라졌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 그리고 김 회장이 만난 3자 회동 때도 그랬다. 결국 시장에서는 대우가 어렵게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몰락의 길로 간 것이다.” 지난 98~99년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강봉균 의원은 글로벌 경영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우그룹의 몰락에 대해 구조조정을 서둘렀다면 산산이 부서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김우중 회장 1인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또 구조조정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정부가 IMF 졸업을 선언한 배경에 대해 “위축된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환란 이후 특히 노사개혁 부문의 성과가 미흡했다고 아쉬워하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부당한 요구가 사회 양극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착수한 개혁작업에 대한 평가는. ▦당시 4대개혁이라고 얘기했다. 금융분야ㆍ기업(주로 재벌기업)ㆍ노사ㆍ공공 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BIS 비율을 높이는 작업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던 것 같다. 반면 금융기관 경영시스템에 대한 개혁작업은 아직도 미완성 상태다. 거대 시중은행간 통합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고 중복되는 기구와 인력들 정리도 부족하다. 특히 돈장사를 하는 금융기관들은 과학적으로 심사해 당장 담보가 없더라도 미래성장 가능성을 보고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 이런 대출관행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미래 성장성을 보는 게 바로 기업대출인데 은행들은 기업대출은 줄이고 가계대출만 크게 늘렸다. -기업 부문에선 30대 재벌의 절반 정도가 주인이 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났는데. ▦이런 변화는 40년 경제개발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인이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도 지배구조의 선진화, 경영 투명성 보장 등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흡한 면도 있다. 노사개혁 부문도 정말 어려운 과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넘긴 유럽국가를 모델로 삼아 노사정위원회를 만들고 노사 쌍방간 해결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해봤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타협을 이룬 게 그리 많지 않다. 아직도 우리의 노사관계는 특히 대기업 노조의 경우 근로조건이 아닌 다른 쟁점을 가지고 투쟁하는 현상이 남아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 측면에서 아직도 대기업 고용 유연성이 부족하고 기업간 임금격차도 크다. 사회 양극화의 가장 큰 진원지 가운데 하나가 수출이 잘되는 대기업의 정규직 노조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간 빅딜 작업에 대한 평가는. ▦빅딜은 김대중 대통령과 5대 재벌 회장(전경련 중심) 사이에 합의가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업의 자율과 전경련의 책임하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당시 내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갔을 때에는 수석실에서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안이었다. 98년 하반기에 재벌개혁을 점검하면서 진척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전경련 측에 “당신들이 중심으로 자율로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속도를 내달라고 독려하는 수준이었지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는데. ▦당시 ‘4인회’가 중요 역할을 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그리고 나 자신 등 4명이 모든 사안을 협의해 결정했다. 그 다음은 사안에 따라 전윤철 공정위원장, 김태동 정책수석이 참여해 조율했다. 금융개혁에 정치적 입김이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기관에 자율성을 주지 않고 정치적으로 인사ㆍ대출에 영향력을 주는 금융시스템이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금융기관들이 통폐합되면서 부실은행 임원진이 모두 물러났다. 얼마나 인사요인이 많았겠는가. 이 자리에 이 사람을 앉혀라, 저 사람으로 바꾸라고 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되니 이헌재 금감위원장에게 아예 보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 -외환위기의 요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게 금융감독기능 부실 문제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당시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기능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관치금융은 금융감독원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지만 아무리 금융감독 업무만 잘한다고 금융기관이 건전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 금융기관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 -대우그룹이 김우중 회장과 강 수석간 사이가 안 좋아서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나나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대우에 조금만 지원을 했으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는데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는 것인데, 그런 오해는 많이 풀렸다. 나는 청와대 수석이나 금감위원장 같은 이들이 특정 기업에 구제금융을 하라는 소위 ‘관치금융’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위기를 치유하겠다며 다시 관치금융을 부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국제 금융기관들은 한국 정부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다시 특정 기업에 특혜금융을 지원하는지 여부를 예민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김우중 회장이 금감원을 통해 내게 3조원, 5조원만 지원해주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했을 때에도 단호히 거절했다. 40~50개 금융기관장을 불러 협력해 돈을 빌려주라고 하면 절대 비밀이 지켜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 현대그룹에 위기가 왔는데. ▦5대 재벌 중 부실 규모로 따지자면 대우 다음이 현대였다. 다만 그 차이는 현대의 경우 형제들간 계열분리를 빨리 진행하고 변화를 시도했다. 팔 건 빨리 팔아야 하는데도 대우는 5대 재벌 중에서 유독 그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우중 회장에게 “몇 가지만이라도 하십시오, 그래야 대우도 살아날 수 있다는 신뢰가 시장에 생기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힐튼호텔을 파십시오. 교보생명 주식도 9,000억원 정도가 있는데 이렇게 어려울 때 팔면 금방 시장에 소문이 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대우그룹이 부도 위기로 가고 있다는 소문이 나고 98년 후반부터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렸다. 다급해진 대우가 회사채를 발행하기 시작했지만 금리가 껑충 뛰었고 다른 회사와 같은 조건으로는 팔리지 않아 금리를 더 얹혀줘야 했다. 금융비용이 자꾸 올라가는 악순환을 자초한 것이다. 대우조선을 팔고 대우차에만 전념했어도 대우가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대우그룹이 왜 고집을 피웠다고 생각하나. ▦김 회장은 말이 안 통했다. 김 회장에게 필요하면 언제든지 날 부르라고 했다. 실제 김 회장을 만나러 힐튼호텔을 찾아간 게 20번 정도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말을 바꾸고 말도 안 되는 요구만 늘어놓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 김 회장 등 3명이 만나면 대통령이 나에게 김 회장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내가 보충 설명하면 김 회장의 말이 엉터리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통령이 김 회장에게 “어떻게 된 거요”라고 물으면 또 말을 바꿨다. 또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 빅딜을 위해 당시 이학수 구조본부장하고 김태구 대우 구조본부장이 만나 협상을 한 적이 있었다. 김태구 본부장은 삼성그룹 직원이 많으니 직원 1명당 차 1대씩만 팔아줘도 30만대를 팔 수 있다며 구매를 요구하고 삼성 금융계열사 자금지원까지 요청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두 사람 스타일도 달랐다. 이 본부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겠다는 의사결정이 나왔다는데 김 본부장은 무슨 얘기만 하면 김 회장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했다. 대우가 김우중 ‘1인 체제’라서 그런 것 같다. 대우는 전세계에 사업을 하는 큰 그룹이었는데 전체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김 회장 단 한 사람뿐이었다. -정부가 대우에 너무 압력을 넣어 GM과의 매각이 불발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김 회장과 나, 대통령, 그리고 GM 사장 4명이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이 GM 사장에게 “대우 잘 좀 봐달라”고까지 부탁했는데 김 회장은 그 자리에서 매각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불렀다. -서둘러 IMF 졸업을 선언해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의 사기가 너무 위축돼 경제에 부담을 줄 정도였다. 전략적으로 “아직도 위기를 극복하려면 멀었으니 더 내핍을 하면 좋겠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경제가 너무 위축돼 돈 있는 사람들조차 소비를 하지 않는 상황을 바꿔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0년 전 위기가 현재 어느 정도 극복됐나. ▦100% 놓고 봤을 때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이들의 기대수준에 비하면 70% 정도는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금융기관이든, 공기업이든 혁신을 하려고 보면 경직된 노사관계로 인한 제약이 있었다. -참여정부 임기 내내 논란이 된 ‘양극화’ 문제와 ‘소득ㆍ분배’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양극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경제 아래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과제다. 국경을 없애고 경쟁원리를 존중하는 체계하에서는 국가간에도 양극화가 생긴다. 정부는 경쟁을 따라가기 어려운 이들과 낙오된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 완전히 낙오되지 않은 계층에게는 경쟁력 자체를 보강하는 지원이, 낙오된 계층에게는 사회안전망으로 감싸줘야 한다. 성장과 분배 논란도 큰 의미가 없다. 정치인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분배를 강조하며 양극화로 인한 경제구조 악화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말만 하고 개선은 안 되고 있다는 불신이 생긴다. ◇약력 ▦43년 전북 군산 ▦군산사범학교ㆍ서울대 상학과 ▦68년 고등고시 6회 ▦6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 ▦85년 〃경제기획국장 ▦90년 〃차관보 ▦94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실장 ▦96년 정보통신부 장관 ▦98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98년 〃경제수석비서관 ▦99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2002년 제16대 국회의원 ▦2004년~현재 제17대 국회의원(전북 군산) 입력시간 : 2007/02/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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