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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시간 다 됐어요. 종로 쪽 벌써 급증하고 있어. 서서히 외곽으로 돌립시다!” 지난 12월31일 밤, 분당에 위치한 SK텔레콤의 네트워크 종합상황실에는 일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2004년의 마지막 12시를 향해 째각대는 디지털 시계와 벽면을 가득 메운 수백개의 트래픽(traffic) 표시 막대들. 둘 사이를 번갈아 쫓는 팀원들의 시선이 사뭇 비장하다. 보신각 타종이 시작되는 12월31일 자정 전후는 이동통신 ‘콜’이 최고조로 집중되는 시간이다. 이 때만 잘 넘기면 한 달여 전부터 준비해온 연말연시 통신소통을 위한 상황실 업무도 90% 이상 끝난다. 상황실의 공기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폭발하려는 순간, 마침내 시계에 ‘0:00:00’가 선명하게 표시됐다. 모니터를 통해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트래픽 막대들도 춤을 추며 치솟아 오른다. 새해를 알리고 축하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수백만건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2005년의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팀원들 속에서 분주하게 트래픽 분산 지시를 내리는 닭띠 여과장 김애경(35) 씨에게 이 순간은 한층 각별하다. 네트워크 상황실 업무를 지난 99년 시작했으니까 새해 특별근무만 벌써 여섯번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물론 설날, 추석 등 특별한 날마다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6년 동안 상황실을 지켰다. 올 설 연휴를 앞두고 상황실을 떠날 김 과장에게 2005년 1월1일 0시는 지난 5년간의 힘들었던 장면을 모두 짊어지고 넘어가는 마지막 고개다. “8살, 5살난 두 아들이 지금도 ‘엄마 언제 와? 내일 와, 모레 와?’ 할 때가 제일 미안해요. 다들 힘들다고 1년만 하고 떠나는데 벌써 6년째네요.” SK텔레콤은 크리스마스 같은 비상 근무일을 앞두고 트래픽 예측을 한 뒤 장비 재배치 등의 소통대책을 준비한다. 상황실 최고의 베테랑인 김 과장의 예측은 지금까지 별로 어긋난 적이 없었다. 딱 한번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대한민국을 열광과 축제의 용광로로 들끓게 했던 2002년 월드컵이다. “월드컵 본선에 앞서 열린 친선경기들을 보니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트래픽이 많이 오르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니까 예측이 완전히 어긋났어요. 광화문 같은 곳에 수십만명씩 모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한 거죠.” 한국팀의 승수를 하나씩 보탤 때마다 네트워크 용량도 계속 증설됐다. 골이 터지고 전국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에도 김 과장과 팀원들은 터질 듯한 감격을 꾹 억누른 채 아슬아슬 한계치를 넘나드는 시스템과 씨름을 했다. 세계 최고의 통화품질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이동통신이 잠깐이나마 불통되는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고객들은 불통을 참아주지 않는다. 이것이 좁은 상황실에서 새해를 맞는 김 과장과 팀원들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1일 새벽 3시께로 접어들자 전국의 트래픽이 거의 잠잠해졌다. 이제 해돋이를 맞는 아침 7~8시만 넘기면 집으로 돌아가 꿀맛 같은 잠을 청할 수 있다. “올해는 평범한 회사원들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장생활 13년차 닭띠 여과장의 소박한 을유년 새해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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