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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 이어 유럽 사태 심화 등으로 시중 자금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면서 시중은행들에 돈이 넘쳐 흘러가자 예금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다만 자칫하다가 산업은행 등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는 일부 금융기관에 자금을 뺏길 수 있는 탓에 정기예금 금리 인하 수준은 아직 1~2bp(0.01%포인트)에 그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23일 "자금 유입이 계속되면서 예금금리를 1~2bp를 인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자사 대표상품인 '국민슈퍼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를 연 3.9%에서 3.88%로 0.02%포인트 인하했다. 신한은행도 지난 18일 고금리 상품인 '두근두근커플 정기예금' 금리를 연 4.28%에서 4.27%로 0.01%포인트 낮췄다. 앞서 14일에는 '월복리 정기예금' 금리도 3.95%에서 소폭 인하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월 복리 정기예금의 금리가 0.05%포인트 수준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금리 상황에 최대한 맞추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도 "시장의 상황만을 놓고 볼 때 금리인하의 압박은 더 높다"면서 "하지만 예금금리의 조정 폭을 0.01~0.02%포인트 수준에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낮추는 게 맞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달 9일 1년짜리 금융채의 금리는 3.50%였지만 이달 21일에는 3.47%로 3bp가 떨어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KB국민슈퍼정기예금' 금리는 3.9%를 유지하다가 22일에야 2bp 낮춘 3.88%로 조종했다. 금융채 인하금리보다는 소폭 높게 유지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여타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우리ㆍ하나ㆍ농협은행도 정기예금 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리조정을 위한 회의를 열어 정기예금 금리 인하를 논의를 하고 있지만 그 폭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예금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는 고금리 정책을 펴고 있는 일부 은행과의 경쟁을 의식해서다. 산업은행의 'KDB다이렉트'는 1년 정기예금을 최고 연 4.5%의 금리를 주고 있는데 이는 일반 시중은행의 정기예금금리보다 1.5%포인트 이상 높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저축은행의 수진잔액은 최근 3개월간 9조원 가까이 줄고 영업정지 저축은행 가지급금으로만 4조원가량이 추가로 빠져나갔는데 이들 자금의 상당수가 은행으로 이동했다"면서 "금리를 높이는 경쟁은 차치하고 낮춰야 할 상황이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은 못 된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의 고금리정책이 시중은행의 예금금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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