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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금융전업인에게/박승 중앙대 교수(송현칼럼)

은행에 주인을 어떻게 찾아 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정책당국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주인을 찾아 주자니 재벌에게 줄 수밖에 없는 모순에 당면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금개위에서는 갑론을 박하다가 결국 재벌의 은행 소유한도는 현행대로 4%로 두고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 예외적으로 10%까지 허용키로 하였다. 그리고 재경원은 그 한도를 조건없이 10%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어느 쪽이나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주인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 정책방향은 재벌의 비대화나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지배를 촉진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대안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금융전업인에게 주는 것이다. 은행법상 4%인 재벌의 소유한도는 그대로 두고 금융만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예외로 하여 소유지분에 대한 제한을 풀어버리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는 문제와 산업집중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면서 금융의 전문화를 통한 금융산업의 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문제는 매우 절실하다. 이 문제는 관치금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주인이 자기 집을 관리하는 것과 세든 사람이 세든 집을 관리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지금 은행에는 주인이 없으며 모두 세든 집에 살고 있는 사람뿐이다. 임직원들은 임기를 채우고 각자 내 몫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 은행에 비가 새고 대들보가 썩는 일에는 나서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 은행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데 거의 맞먹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속에서 은행은 부실화되어 있고 사람을 줄이려 해도 줄일 수도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금융의 현실이다. 한보사건에서 드러난 엄청난 비리는 바로 「주인없는 은행」들이 저지른 일이다. 은행돈이 내돈이라 한다면 외압이 있다고 해서 뻔히 떼일 줄 알면서 누가 그런 기업에 그 엄청난 돈을 빌려 주겠는가. 더구나 이제는 금융도 완전개방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러면 은행을 재벌들에게 주어도 좋은가. 당장은 그것이 쉽고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자본주의의 장래를 생각할 때 안될 말이다. 산업화 초기단계를 지나 선진화단계에 들어선 우리 경제는 이제 재벌중심 경제에서 벗어나야 할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국이 경쟁력있는 선진국이 되려면 재벌중심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재벌에 의한 산업지배 체제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1백년전 산업화 초기시대, 다시 말해서 중후장대의 「굴뚝산업」시대에 있었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때에는 육체노동과 규모경제가 주도하는 산업형태였고 중앙집중적, 명령적 의사결정이 효과적인 시대였다는 지적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와 전문화시대를 맞고 있다. 산업은 중후장대에서 경박단소로, 육체노동은 지식노동 중심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지휘체계는 분권시대를 지향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정경유착에 따른 문제들이 지나친 산업집중 문제와 표리의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재벌들에 의한 상호출자, 상호보증, 경영과 재산의 세습 등 후진적 관행은 사회형평의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산업조직은 재벌형태 보다는 전문적인 개별기업, 그리고 중기업들이 주도하는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 재벌에 의한 은행지배는 산업경쟁력이나 산업민주화라는 양면에서 다같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은행의 주인을 금융전업인 중에서 찾아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을 떠맡을 금융전업인은 당장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재벌들도 우선 가족끼리 개별기업으로 분할하도록 유도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금융전업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금융은 은행, 보험, 증권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금융전업인은 이들 금융분야를 포괄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 과제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된다. 10년 또는 1백년 뒤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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