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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명분없는 의약분업 시행연기
입력1999-03-03 00:00:00
수정
1999.03.03 00:00:00
申正燮(사회부 차장)예부터 우리네 선비들은 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 「명분」을 가장 중시해 왔다. 명분없는 행동은 소인배나 하는 짓으로 여겨왔다. 최근 우리 정치권을 보면 소인배란 지적이 무섭지 않다는듯 명분없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바로 의약분업 시행연기 결정이 그렇다.
국민회의를 비롯한 정치권은 36년의 해묵은 과제였던 「처방은 의사, 조제는 약사」란 의약분업의 7월 실시를 목전에 두고 갑작스럽게 연기를 결정했다. 이들이 한결같이 내세운 의약분업 연기의 「명분」은 의·약계 준비부족과 국민불편. 그러나 이 명분은 1년이 아니라 10년이 지나 언제 어느때 의약분업을 실시해도 불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설득력도 「명분」도 모두 없다.
그동안 정부는 65년 약사법제정 당시부터 80년대말까지 누차에 걸쳐 의약분업 시행을 시도해 왔다. 82년에는 전남 목포에서 3년간이나 의약분업 시범사업까지 펼쳤다. 그때도 의사·약사간의 이견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 결국 94년 한·약분쟁의 막바지에 약사회의 요구로 약사법까지 개정해가며 5년내 의약분업 실시를 명문화 했다.
그리고 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올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의약분업은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집권당은 이틀만에 이를 뒤집었다.
국정운영에는 일관성과 책임행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부는 그동안 의약분업 실시준비는 완료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당은 이익단체들의「준비부족」 주장을 받아들였다. 도대체 당정의 손발이 이렇게 따로 놀아도 되는 것인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이미 이번 의약분업 시행에 앞서 5년의 유예기간이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의료단체와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의약분업추진위원회까지 구성,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런데 시행 4개월여 앞두고 합의당사자들이 준비가 안됐다는 이유로 연기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그래서 「명분」없는 궤변으로 들린다.
의약분업은 의약품 오·남용 방지와 약값부담 절감, 의료인력의 효율성 제고 등 국민건강을 위해 하루가 시급한 제도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항생제 내성균 보유국」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을 정도로 항생제의 유통·남용 폐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이제라도 당정은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의 『국민편의가 집단이기에 밀린 꼴』이란 지적과 함께 터져나온 『예정대로 실시하라』는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국민의 소리이자 그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제대로된 「명분」을 찾는 것이다.
36년이나 미뤄온 의약분업은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 다만 정치권의 주장처럼 복지부가 그동안 의약분업 시행준비를 소홀히 해왔다면 관련자를 문책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하면 된다. 정부의 신뢰확보를 위해서라도 국가 주요정책의 표류는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신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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