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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지재정은 취약하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령화로 복지비용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지만 국민연금ㆍ건강보험 등 공보험의 재정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현재의 복지 체제만 갖고 가더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지난 2009년의 10.5%에서 오는 2050년에는 20.8%로 늘어나고 국가채무는 2012년 34.5%에서 2050년 115.6%로 급증한다. 반면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납부할 미래세대들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에 공적복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적연금ㆍ민영보험과의 연계를 통해 공사(公私)보험을 아우르는 새로운 복지 시스템을 짜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다.
26일 서울경제가 후원하고 보험연구원, 여야 정치권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공사 보험 역할 제고 방안' 정책 세미나에서 보건복지부ㆍ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자와 학계 전문가들은 "노인 및 중하위층을 대상으로 한 개인연금, 민영 건강보험 활성화 등을 통해 공적보험과 사적보험이 함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복지를 주제로 한 토론회는 있었지만 당국과 전문가들이 모여 공적ㆍ사적보험을 총체적으로 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태열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전병왕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장, 박정훈 금융위원회 보험과장, 이기효 인제대 보건대학장, 정기택 경희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노후소득보장 수준에서 이날 보험연구원이 전망한 우리나라 중산층의 미래는 암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매년 조사하는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보험연구원이 미래 노후소득을 추정한 결과 중상위층에 속하는 4분위층의 월소득(부부 기준)도 117만원으로 최저생계비(97만4,000원)를 근소하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5년 근속하고 55세부터 은퇴 시기로 접어든다는 가정하에 전망치가 산출됐다.
국가 통계상 소득순위별로 1~5분위까지 나뉘며 1분위는 최저소득층, 5분위는 최상위소득층에 해당한다. 통상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3분위에서 시작해 4분위까지를 포함한다.
이태열 실장은 "중하위층이라 할 수 있는 3분위층은 물론 그 위의 4분위층도 최저생계비를 다소 웃도는 게 우리나라 국민 노후의 현실"이라며 "이들 그룹에 대해서는 공공보험이 아니라 세액공제 등을 통한 개인연금 확대 등 사적보험 활성화로 스스로 노후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사적연금 활성화는 최소한의 노후 안전장치인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 이를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전제하에 이뤄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국민연금이 재정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감당할 수 있을 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하루라도 빨리 점진적으로 완만하게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데 패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윤석명 박사는 "국민연금의 현행 구조에서 은퇴가 시작된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후세대와 비교해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타게 돼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점진적으로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후세대가 갑자기 보험료나 세금을 떠안게 돼 적지 않은 계층 간 사회갈등이 생기게 된다"고 진단했다.
윤 박사는 또 "내년에 사회보장지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복지비용은 급증하는데 이 금액이 사회취약계층이 아닌 공무원연금ㆍ사학연금 등으로 과도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려면 재정난에 처한 이들 특수직 연금에 대한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열 실장은 공허한 복지논쟁을 그만두고 현실에 기반한 복지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연금의 점진적 보험료 인상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2015년부터 매년 0.15%포인트씩 보험료를 인상해 현행 9%인 보험료를 2054년까지 15%로 올릴 경우 기금 고갈의 시점은 2075년으로 늦춰진다. 여유가 좀 더 생긴 만큼 미래세대가 이 과정에서 출산율을 높이고 이민자 수용성 확대 등을 통해 국민연금의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와 함께 다층노후보장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중산층ㆍ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각각의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박정훈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이번주 발표할 금융 비전의 최고 핵심 부문이 100세 시대를 대비한 개인연금시장의 활성화다. 판매채널 절감 등을 통해 저렴한 개인연금상품을 공급하는 등 취약계층에 대한 개인연금 확대를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보험사 재정건전화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해외 환자 유치, 건강관리서비스도 가능하도록 관련 부처와 협의를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태열 실장은 "소득 1분위층의 취약계층은 두루누리사업과 같이 국가가 일정 보조금을 지급해 사적연금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고 중위층들은 세액공제ㆍ소득공제 확대 등을 통해 스스로 개인연금 대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이구동성으로 중소사업장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열악한 퇴직연금 가입률이 제고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업종별로 묶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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