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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방향설정 아쉽다/김재원 한양대 교수·경제학(특별기고)
입력1996-12-04 00:00:00
수정
1996.12.04 00:00:00
김재원 기자
◎경쟁력 강화 우선 고려/보완책 마련 시급하다정부의 노사관계 개혁의 최종안이 수많은 진통을 겪으며 마련된 만큼 이를 계기로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할 수 있도록 노·사·정의 합심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21세기를 불과 4년 앞둔 시점에 와 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의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대내적으로는 날로 높아가는 국민의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조적 노사관계 및 종업원의 참여와 주인의식 함양을 통한 노사관계 제도 측면에서의 경쟁력 강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노개위는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합의안과 미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들과 공익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고 이를 기초로 정부는 노사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 정부의 최종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노·사·정 모두 현재의 정부안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개위의 건의안이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이익을 안배한 절충식 합의안이라면 정부의 최종안은 이보다 상당히 진일보하여 일관성 있는 노사관계 개혁의 구상을 마련했다고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집단적 노사관계는 노측에 유리하게, 개별적 노사관계는 사측에 유리하게 구상됐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정부안을 평가해 볼 때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주도하여 좀더 거시적·장기적 측면에서 개혁의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는 노동법이 국회 개정절차를 거쳐야 하고 노사 쌍방의 극심한 반대가 있을 경우 노사관계 개혁 자체가 무산됐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차선책이라고 볼 수 있다.
노사관계 개혁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은 노측의 입장에서는 삼금(복수노조 불허용, 제3자 개입금지, 정치활동 참여금지)의 허용이었고 사측의 입장에서는 삼제(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의 성취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파견근로제는 다음 개혁과제로 넘겨졌지만 곧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간 이해득실을 평가해 보자. 이른바 삼제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긍정적인 판례가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용자측이 얻는 부분은 별로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삼금의 해제로 노측은 노동운동의 운신의 폭이 커졌고 특히 민노총은 이제 불법 또는 법외노조라는 제약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노측보다는 사측의 불만족과 불안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
노측이 불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은 노조전임자 급여, 무노동무임금 등 노조활동 관련 부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관련 부분이다. 한편 사측이 불안해 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의 허용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른 고용불안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생산직의 전반적인 구인난에 처해 있어서 사무직의 고용불안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측은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금지의 허용에 따른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무엇보다 염려하고 있다. 즉 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수준을 고려할 때 이들의 허용은 한국노총과 민노총간의 세력다툼을 증폭시켜 특히 중소기업에 어려움을 주게 되고 이들 중소기업중 상당수가 하도급 업체인 점을 감안할 때 모기업의 생산차질과 노사관계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사관계 개혁의 최종안과 관련해 몇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노측은 사무직 근로자의 고용불안, 사측은 삼금의 해제에 따른 전반적인 노사관계 불안과 이에 따른 사업장에서의 생산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노사가 느끼는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의 마련에 신중을 기해주길 바란다. 현재 정부안에서도 어느 정도 완충장치가 돼 있으나 향후 노사관계의 진전 추이를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제도적 보완을 해 노사관계 개혁에 따른 불안심리를 신속히 해소하겠다는 의사를 노사 모두에게 전달해 주기 바란다.
둘째, 정부의 최종안은 국가의 거시경제적 발전과 이를 통한 삶의 질 향상보다는 노사간 이해관계의 안배를 기초로 작성된 만큼 노사관계 개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시행과정을 지켜 보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실상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이상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한 국가들을 벤치마킹한 것도 아니고 노사관계 개혁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노사관계 패러다임에 충실한 개혁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도 보다 나은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정부가 앞장 서서 일과성 개혁에 그치지 않도록 이를 수정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노사관계 개혁의 산물인 노사관계 제도가 법제화될 경우 이의 탄력적인 운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최근 유럽 노사관계의 추세는 교섭구조의 분권화 경향, 국가경쟁력을 중시하는 협조적 노사관계, 신축적 제도운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선진국의 노사관계 변동추이가 주는 시사점이 제도 운용과정에서 참조돼야 할 것이다.
넷째, 2차 개혁으로 미루어진 과제중 중용한 것이 많다. 이들에 대한 후속 개혁작업의 고삐가 늦춰져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임금구조 개선을 위한 표준임금제도의 일원화 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노동법의 국회심의 과정과 시행의 단계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노사는 물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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