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아이컨·SAC캐피털 등 배당 확대·경영진 교체 압박
애플·소니·GM 등 큰 타격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外 기업 자체 대책 마련 필요
'이리 떼(wolf pack) 펀드.'
유럽기업지배구조연구소(ECGI)가 최근 삼성물산을 공격하고 있는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헤지펀드를 묘사한 표현이다. 굶주린 이리처럼 떼로 달려들어 기업을 물어뜯어먹는다는 비유다.
ECGI는 지난 3월 헤지펀드에 대한 보고서를 내면서 엘리엇을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컨, SAC캐피털어드바이저스 등과 함께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most frequently involved)' 10대 이리 떼 펀드로 꼽았다.
엘리엇은 9위였는데 ECGI는 전 세계에서 이들 펀드의 활동내역 378건을 분석했다. ECGI는 "전 세계 헤지펀드 가운데 5분의1 정도를 이리 떼 펀드로 분류할 수 있다"며 "이들은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들 헤지펀드의 습격을 버텨내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데다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공격해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규모와는 관계가 없다. 애플 같은 거대기업도 이리 떼 펀드에 노출되면 방도가 없다.
아이컨은 2013년 10월 애플의 현재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낮다며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애플의 경우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무배당 원칙을 펴왔던 기업이다.
아이컨은 차근차근 애플을 압박했다. 아이컨은 트위터에 애플의 주가가 굉장히 낮게 평가되고 있으며 상당 수준의 애플 주식을 보유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자사주 매입 규모를 1,500억달러 수준으로 늘려달라는 편지를 보내 압박했다. 요구사항을 따로 정리한 홈페이지도 개설해 애플에 대한 선전전을 벌였다.
결국 애플도 항복했다. 아이칸은 이를 통해 약 10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소니도 대표 사례다. 서드포인트는 201년 5월 소니의 지분 7%를 인수한 후 엔터테인먼트사업부 분사 등을 요구하면서 17개월간 회사를 괴롭혔다. 사업부 분사는 실패했지만 소니는 이 때문에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고 감원도 했다.
서드포인트는 지난해 10월 투자수익률 20%를 달성하면서 지분을 팔아치웠다. 소니는 헤지펀드에서 경영권을 지키기는 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또 다른 다국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예외는 아니었다. 헤지펀드 밸류액트는 MS 지분 0.8%를 인수한 후 스티브 발머 CEO 사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엘리엇도 과거 사례가 많다. 엘리엇은 미국 정보기술(IT) 솔루션기업 EMC에 기업분할을 요구해 결국 EMC는 자회사 싱크플리시티를 매각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도 엘리엇과 안 좋은 추억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M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엘리엇은 헤지펀드인 폴슨 및 서드포인트와 함께 GM의 자회사인 델파이를 헐값에 사들였다. 이들은 미국 정부에 델파이의 채무 탕감 등을 요구했고 실제 관철됐다. 이후 엘리엇은 델파이를 재상장시켜 약 12억9,000만달러의 이익을 냈다. 미국 정부가 고용과 국가 경제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GM의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다.
이 외에도 아이컨은 2010년 모토로라 지분 10%를 취득한 후 휴대폰사업을 분리할 것을 요구해 결국 모토로라는 구글에 휴대폰사업을 125억달러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아이컨은 2조원 이상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리 떼 펀드'들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는 기본이고 이사회 의석을 확보하거나 경영진 교체를 시도한다. 조직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수합병과 분사를 요구해 회사의 중대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경영권 방어와 기존 주주 설득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게 된다.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SK만 해도 주주 설득에 1조원가량이 나갔다. 이를 연구개발(R&D)이나 인수합병에 썼으면 회사 경쟁력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대 다국적 기업도 헤지펀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경영권 방어제도 이외에 회사 스스로도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이중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경영권 안정화를 지속적으로 꾀하면서 중요한 경영상 결정에 대해 주주들을 설득시킬 논리를 잘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애플이나 소니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도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며 "국내 대기업들도 스스로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낼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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