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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눈에 띄는 신기술과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현행 특허출원 제도는 형식이 엄격하고 출원 후 수정 기회가 제한돼 있어 중소 벤처기업들은 시의적절한 권리화에 어려움을 겪기 일쑤다. 이에 특허청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 보호 강화방안'을 마련, '아이디어→지식재산→창업ㆍ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축에 나서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3회의 기획시리즈를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새 방안,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 회사원 A씨는 식당에서 냅킨을 수저받침으로 이용하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접착식 수저받침'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수저받침에 메모 기능을 추가하고 '메모지 기능이 있는 접착 메모지 냅킨'에 대한 제품 상세설계를 통해 약 한달 뒤 최종 제품을 완성했다.
특허출원을 하려던 A씨는 직접 명세서 작성을 하다 까다로운 출원 형식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변리사를 통해 다시 시도하던 A씨는 특허획득에 실패하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A씨가 최종 제품화하기 전에 유럽에서 유사한 기술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약 3개월 만에 제품을 내놓았지만 복잡한 절차와 형식으로 인해 특허출원 시기를 놓쳐버렸다.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신시장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이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는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특허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수한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신속히 특허로 보호 받고자 해도 엄격한 형식으로 인해 출원시기를 놓쳐 특허획득이 좌절되는 일이 즐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는 중소ㆍ중견기업과 개인으로 갈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지식재산연구원이 일반인 6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의적 아이디어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는 98.6%가 동의했지만 현행 제도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잘 보호한다는 의견은 16.9%에 불과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업체의 경우 중소기업이 많다 보니 서비스하기 급급하고 비용으로 여겨 지식재산권(IP)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제도적으로도 여전히 모방경제 시대의 틀에 머물러 산업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A씨 같은 경우 미국ㆍ유럽과 같은 선진국이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사례다. 미국ㆍ유럽은 최초 특허출원시 '발명에 대한 설명'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발명의 명칭' '기술 분야' '배경기술' '발명의 내용' '발명을 실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과 같은 많은 항목을 작성해야 한다. 이로 인해 발명자가 발명을 완성하거나 논문발표를 한 후 발명의 내용을 정식 명세서 형식으로 재작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연구노트나 논문 단계에서는 아직 특허출원이 불가능하다.
출원 후 수정 기회 제한 등으로 권리화에 애로를 겪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특허법에는 일정 기간 특허의 내용을 외부에 공개했다 해도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신규성을 의제(기존에 공개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줌으로써 신규발명을 한 특허출원자를 보호해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추후 보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등록이 되지 않거나 거절 결정을 받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국내 대표 벤처업체의 특허담당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특허 전담조직이 있는 기업은 그런 실수가 없는데 중소 벤처기업은 인력이 부족해 간혹 낭패를 보기 때문에 절차가 다소 완화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미국처럼 사후에 과태료를 부담하더라도 행정절차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의 아이디어ㆍ기술 유출 방지와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해결 시스템은 미흡한 부분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출원ㆍ등록 건수와 같은 아이디어의 창출은 글로벌 4위이지만 아이디어 도용ㆍ베끼기에 관대한 문화로 인해 국제경영개발원(IMD) IP 보호순위는 지난해 세계 31위에서 올해 40위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기술유출 경험 중소기업은 12.1%이며 유출 1건당 피해액은 평균 15억7,000만원에 달한다.
이해영 리앤목 특허법인 변리사는 "현재도 상당히 융통성을 갖고는 있지만 조금 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면서 "영어로 특허출원을 할 수 있도록 국어주의를 바꾸고 심판청구 후에도 분할출원이 가능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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