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형 연기금 운용사인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가 최근 제일모직(028260)과 삼성물산(000830)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을 공격하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헤르메스는 지난 2004년 3월 삼성물산의 지분 5%를 확보한 뒤 8개월 만에 3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겨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사커 누세이베 헤르메스 대표는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헤르메스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주주·근로자·사회 등 세 주체의 권익을 보호하는 게 기업의 가장 큰 역할"이라며 "연금 수혜자 등 투자자들에 대해 신의성실의무를 지키기 위해 펀드 자산에 편입된 기업들만큼은 세 주체의 권익을 모두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투자방향"이라고 밝혔다.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노이즈 마케팅' 등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엘리엇 등 일부 행동주의 펀드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헤르메스는 영국 최대 연기금인 브리티시텔레콤연금(BT Pension Scheme)의 자회사이며 지난 1·4분기 기준 300억파운드(약 52조원)의 자산을 주식·채권·부동산·인프라 등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포티스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낸 누세이베 대표는 2009년 헤르메스에 합류했다.
헤르메스는 2004년 삼성물산의 지분 5%를 확보한 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가능성을 내비쳤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8개월 뒤 단 하루 만에 이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헤르메스에 주가조작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고발했으며 법정 분쟁으로 이어진 적대적 M&A 논란은 대법원이 2008년 헤르메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누세이베 대표는 "한국의 사법당국이 시장에서 오해한 부분에 대해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준 점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또 이달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의에 대한 엘리엇의 임시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사실을 전하자 그는 "잘 모르는 사안이며 사법당국이 적절히 판단할 일"이라면서도 "한국이 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만큼 앞으로 유사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오는 17일 합병 주총 전에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 5.76%의 의결권과 관련해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헤르메스는 엘리엇 사태에 엮여 국내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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