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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현지르포] (3) 부산 녹산공단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차도 생기도 없었고 희망마저 사라진 듯했다.김해공항에 내려섰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장이 일부나마 돌아갈 것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라도 모여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택시운전사가 『아무것도 없는 데 무엇하러 가느냐』고 물어보았을 때도 설마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삼성자동차 7KM 전방」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는 공단진입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단입구까지 왕복 6차선도로를 5분가량 가는 동안 눈에 띠는 사람과 차량이라고는 도로보수공사를 위해 세워진 트레일러 한대와 그 운전기사 뿐이었다. 인근 중소업체의 한 직원은 『이곳은 삼성과 대우의 빅딜발표가 있기 전인 지난주 토요일까지만 하더라도 출퇴근하는 차량으로 교통혼잡을 빚을 정도』였다며 『불과 이틀사이에 모든것이 달라졌다』고 허탈해 했다. 없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삼성자동차와 거래해왔던 협력업체들의 의욕도 한순간에 소멸됐다. 그리고 사라진 희망은 부도라는 무서운 악몽에 부딪쳐야 했다. 녹산공단내 위치한 A사. 자본금 100억원에 연간 매출규모는 겨우 2~3억원. 이 회사는 나름대로 일류로 크겠다는 꿈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 희망이란 단어는 이미 머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내달이면 부도가 날 것』이라는 K사장의 말처럼. 자본금 480억원의 B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회사에 나오기는 했지만 무슨생각이 있어 나온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곧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는데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사장의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까지 15만대이상을 생산하겠다던 삼성의 약속에 수 백억원을 들여 생산라인을 구축할 때 가졌던 부푼 꿈도, 적자운영을 계속해 오면서도 언젠가는 우뚝 설날이 올 것이라는 업계의 희망도 빅딜바람에 날라가 버린 것처럼 보였다. 협력업체의 절망감은 곧 삼성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김해에 위치한 또다른 협력업체인 C사의 L사장은 납품단가가 낮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도 상여금은 커녕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해왔는데 이제와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분통을 삭이지 못했다. 『삼성측에서 「절대로 포기않고 독자경영을 유지해 나가겠다. 여러분도 동요하지 말고 생산에만 전념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 바로 어제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뒤바뀔 수 있는가. 그러고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L사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협력업체들이 가장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대우자동차가 인수한 후다. 대우자동차가 남품 거래선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더욱 불안한 것은 삼성차종을 계속 생산한다 하더라도 새차종에 대해 신규주문을 내지 않을 경우다. 그럴경우 결국은 공장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자동차라는 것이 다른 산업과는 달라 한번 차종을 바꾸게 되면 그에 따른 모든 금형도 바꿔야 하는데 신규주문이 없을 경우 기존 생산라인은 고철덩어리로 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해에 위치한 D업체의 K부장은 『설사 대우가 인수해서 계속 거래를 한다해도 SM시리즈를 계속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장』이라며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또다른 문제는 삼성자동차의 빅딜로 부산경제 자체가 흔들거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협력업체중 몇곳은 부산에서 손가락에 꼽는 중견기업의 계열사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무너지면 이들 기업도 사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실제로 몇곳은 내부적으로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절망감과 위기감은 집단움직임으로 표현됐다. 오후 2시 부산역광장. 1차 협력업체들의 모임인 지성회와 시민단체 연합으로 「삼성-대우 빅딜반대」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관련업계 종업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자연적으로 터져나온 말.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주요임원의 삭발식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삼성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도 일고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돌아가는 어깨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무거운 질문만이 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뒤로 빅딜바람만큼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부산경제는 없다』는 택시운전사의 말처럼 남은 것은 없었다. 【부산=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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