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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의 가을/유재용 소설가(로터리)
입력1997-11-15 00:00:00
수정
1997.11.15 00:00:00
유재용 기자
대도시의 가을은 가로수를 통해서 온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플라타너스 잎이 보도에 떨어져 뒹굴면 대도시 주민들은 비로소 가을이 깊어졌음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 속에는 서글픔이 짙게 배어들어 있다.가을나무, 가울숲은 아름답다. 곱게 물든 단풍은 물론이고 떨어져 뒹구는 낙엽마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아무때나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봄이나 여름에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진다면 오히려 추해 보일 것이다. 가을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봄 여름을 지나오면서 그들 몫의 역할을 감당해낸 뒤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력의 결과인 풍성한 수확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은 많은 결실을 거두고 휴식기에 접어들고 있다. 최선의 노력과 거기에 걸맞는 수확을 거두었을 때 편안하고 만족스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대도시 주민들도 그렇게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휴식의 필요성을 깊이 깨닫고 있으며 또 목말라하고 있다.
아니, 대도시 주민들, 그 가운데서도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이 휴식에 목말라하고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에 걸쳐 하루 반 동안의 공인된 휴식기간이 일주일마다 그들에게 제공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들은 예전의 어느 나라 왕후장상이 누렸던 것 못지않게, 오히려 더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풍요롭고 편리한 삶은 노력과 수확의 결과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피곤해하고 휴식을 갈망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나 그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생활도구의 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데에 큰 원인이 있다는 진단은 일찍이 내려져 있다. 직접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애써 가꾸고 거두어 들일 때 벅찬 보람과 감사함을 맛볼 수 있도록 사람은 만들어졌다. 그런데 대도시인들은 그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가슴 벅찬 감사함을 맛볼 수 없는 불감증환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대도시 주민들은 가을나무 가을숲을 아름답게 바라보면서도 서글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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