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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는 껍데기일 뿐… 짭짤한 연봉에 압박 덜해 후회 없죠"

지방 조선사 생산직 취업한 어느 명문대생 그의 사연은…


고시 준비 탓 스펙 변변찮아 대기업 두드려도 불합격…

갈수록 취업 문턱 높아지자 화이트칼라 벗고 현장으로

생산직 인식 긍정적 변화 속 인권위 '역차별' 금지 권고로

대졸 우수 인력 더 몰릴 수도


서울의 명문 S대 철학과 출신의 A(30)씨. 학벌 중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일류 대학을 나왔지만 번듯한 직장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 나는 꿈'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난 2009년부터 3년간 사법고시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연이은 낙방이었다.

하루 10시간씩 고시 공부를 하느라 학점과 공인 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 관리'는 엄두도 못 냈다. 고시 낙방에 알뜰한 스펙 쌓기까지 실패한 그에게 남겨진 것은 명문대 출신이라는 번드르르한 허울뿐이었다.

대기업 문을 몇 번 두드려봤지만 학벌 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스펙이 없는 그를 반기는 회사는 없었다.

앞날을 고민하는 그의 눈길을 잡아챈 것은 생산직 채용 공고였다.

A씨는 "처음에는 당치도 않은 대안이라고 무시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몸이 조금 고되도 일반 사무직에 비해 정신적인 압박이 훨씬 덜하고 정규직이 되면 고용 안정성도 상당히 높은 만큼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여겼다"고 당시를 돌이켜보았다.

A씨는 현재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근로자로 경남 거제의 옥포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공사지원부 소속으로 배 내외부의 높은 곳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족장(발판)을 만드는 일이 주된 임무다.

원래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 등에서 7개월 정도 근무하다 지난달 거제로 일터를 옮겼다.

그는 "나를 비롯한 또래 근무자의 연봉이 3,500만~4,000만원 수준인데다 거제도에서 일하면서 삼시 세 끼와 숙박이 해결되니 유흥에 탐닉하지만 않으면 돈 모으기가 아주 좋다"며 "조금만 더 일하면 이런저런 사유로 지게 된 빚도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A씨의 경우처럼 4년제 대학, 더 나아가 명문대 출신이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산직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갈수록 높아가는 취업 문턱 앞에서 책상머리에 앉은 '화이트칼라'만 고집하기보다 땀 흘리는 노동 현장이라도 적지 않은 임금이 보장된다면 마다하지 않고 살 길을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명문대 출신 블루칼라'를 취업난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디어에 오르내리며 화젯거리가 됐던 '명문대생의 9급 공무원 응시'가 이제는 흔해 빠진 일이 돼버렸듯 학벌 좋은 생산직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취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한 관계자는 "과거보다 확실히 생산직에 대한 엘리트 대학생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기업별로 구체적인 근무 여건이나 처우를 묻는 구직자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A씨 역시 "그동안 생산직으로 일하면서 강원대나 전남대 같은 지방 명문대 출신은 꽤 많이 만났다"며 "번듯한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생산 현장을 뛰는 사례가 이제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20~29세 실업률이 9%에 달하는 가운데 지난해 일부 대기업의 생산직 채용 방식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와 정부의 관련법 개정은 생산직을 택하는 명문대생의 숫자를 더욱 늘리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권위는 지난해 "대기업이 생산직을 채용할 때 대졸자를 배제하고 고졸 위주로만 뽑는 것은 역(逆)차별"이라고 권고했다. 정부도 취업시 차별금지 요소로 성별·신앙·연령 등의 기존 항목 외에 학력을 새롭게 추가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주관적인 평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채용의 특수성을 감안해 관련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벌금 등의 제재 규정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현재 삼성·현대차·GS칼텍스 등 일부 대기업은 여전히 생산직 채용시 고등학교·전문대 졸업자 등에 국한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산직 채용 범위 확대와 젊은이들의 인식 변화가 맞물리면 4년제 대학을 나왔음에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신(新)사각지대'를 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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