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았지만 서울에서만 올해 1만5,000실가량의 숙박시설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부동산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시행사와 건설사는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앞다퉈 비즈니스호텔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아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곳이 대부분이다. 시중은행들이 호텔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도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며 요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에 정부가 부랴부랴 특별법까지 마련해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호텔 PF 사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PF에 놀란 시중은행들 몸 사리기 일관=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서울시내에서 호텔 인허가를 마쳤거나 건축이 진행 중인 사업장은 50개. 호텔 건립을 계획 중인 프로젝트도 32개에 이른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시중은행 투자담당자에게 평균 4~5건의 호텔 투자 의뢰서가 전달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호텔 PF 투자 의뢰서가 한 해에 1~2건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 들어 우리ㆍ신한ㆍ국민ㆍ하나ㆍ기업 등 주요 시중은행 5곳에서 승인한 호텔 PF대출은 단 1건도 없다. 부동산 PF의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호텔 PF 역시 문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시공사 보증만 있다면 시행사에 PF대출이 쉽게 나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공사 보증이 있어도 담보대출비율(LTV)이나 자기자본금 비중, 대형 호텔 운영업체 확보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 대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서울시내 4대문 안에 1,000~1,650㎡형 규모의 비즈니스 호텔을 지으려면 보통 800억~1,000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다. 이 경우 시행사는 사업비의 30%인 300억원가량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자본금 마련이 쉽지 않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자기자본금 비중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는 수백억원대의 자기자본을 마련해오는 시행사가 거의 없어 대출 실행이 어렵다"고 전했다.
◇자산운용사 주도 사업에 발만 담가=호텔 투자시장에서 은행들이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이 시장의 주도권은 자산운용사들로 넘어갔다. 은행들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나 리츠를 통해 조성한 자금에 살짝 발만 담그는 방식으로 참여할 뿐이다. 이미 조성된 자금으로 선매입한 프로젝트에 선순위 담보대출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이 건물을 짓기 전에 선매입하는 호텔 사업의 경우 미분양에 따른 위험이 거의 없다. 또한 대형 호텔운영 업체들이 10~20년간 장기로 임대차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호텔 운용수익을 보장해줘 연간 8%가량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이 호텔 PF에 소극적인 반면 서울시내 오피스 건물이나 상가 건물의 리모델링 사업에는 적극적이다. 사업비가 200억~300억원가량으로 저렴하고 시공 기간이 짧아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숙박시설 신규 공급 계획 차질 불가피=이처럼 은행들이 호텔 PF 대출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서울시가 애를 태우고 있다. 올해 서울시내에서 약 3만실의 숙박시설을 신규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 오는 27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호텔 건축시 일반 주거지역 및 준주거지역은 500%, 상업지역은 1,500% 이하까지 용적률 적용 기준을 확대해준다는 내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특별법으로 용적률이 크게 확대되면 사업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금융권의 적극적인 호텔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들의 시각은 유보적이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호텔 용적률 확대는 사업성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늘어난 용적률만큼 사업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고 사업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호텔 PF 대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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