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일인 만큼 신중을 가하려 합니다." 지난 29일 밤11시. 국가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 신임 단장으로 내정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집 앞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술을 한잔 한 탓에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기자를 만나자 눈빛이 비장하면서도 신중해졌다. 그는 "아직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4조4,000억원의 지식경제 R&D 투자방향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만큼 "이제 업무파악을 하는 단계여서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의 눈빛에서는 고민이 묻어 나왔다. 황 전 사장은 "세상이 빨리 변해 대기업도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황의 법칙'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이끈 황 전 사장은 대한민국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지난해 1월 삼성전자 사장을 맡은 지 9년 만에 후배들을 위해 용퇴한 뒤 약 1년2개월 만이다. 당초 황 전 사장은 상근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국가 CTO 자리를 고사했지만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나서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경부 역시 연 보수 3억원 내외(성과급은 연봉의 30% 이내 별도 지급)인 최고 수준의 대우를 제시하며 장관급으로 예우를 갖췄다. 임기는 업무의 연속성ㆍ책임성 등을 감안해 3+3년으로 정해졌다. 황 전 사장은 21년 전에도 국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스탠퍼드대를 거쳐 인텔에서 잘나가던 그는 1989년 세계 반도체 최강국이었던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일념으로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일단 결단을 내린 만큼 황 전 사장은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인 25일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뒤 지경부 업무보고를 받는 등 수시로 지경부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다. 앞으로 산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게 되지만 아직 사무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당분간은 그간 머물렀던 중앙일보 건물에서 일할 계획이다.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 신화를 써온 황 전 사장. "부담이 많지만 미래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 도전해보겠다"는 그가 삼성전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에서 국가 R&D의 상징 같은 존재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