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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계절이 왔다. 특별히 값비싼 장비가 필요 없는 스포츠인데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서 꽃을 피운다는 생활스포츠인 마라톤이 한국서도 붐을 일으킨 지 이미 오래. 겨울의 막바지인 요즘이면 마라톤 동호인들은 신발끈을 조이고 서서히 훈련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봄부터 계속 열리는 각종 대회에 참가한다. 이들은 왜 달릴까. 조금이라도 달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달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인데도 말이다. 오는 4월 2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리는 LG화재코리아오픈마라톤대회에 참가신청을 내고 훈련에 열심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마라톤 동호회 ‘달e미’ 회원들의 훈련 현장을 찾았다. 남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이 이들의 훈련 시간. 밤늦게까지 달린 회원들은 “대회를 앞둔 2달 전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해야하는데 요즘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들을 달리게 하나
동호회 대표인 김진환 씨(39)는 99년 처음 마라톤에 입문한 이래 풀코스를 7번이나 완주한 베테랑이다. 최고 기록은 3시간 40분. 이번 대회의 목표는 생애 첫 ‘서브스리’(3시간 이내 주파)를 기록하는 것이다. 김 씨는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해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마라톤에는 고통이 따른다. 김 씨는 “처녀 출전한 대회에서는 2㎞를 달리니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며 “당시는 자전거, 버스, 걷는 사람 등 움직이는 모든 게 부러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훈련을 통해 지구력과 스피드를 길러 2년 만에 5㎞, 10㎞, 하프를 정복하고 이듬해 풀코스를 완주했다. 김 씨가 설명하는 마라톤의 최대 쾌감은 피니시 라인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매일 훈련 때마다 그 순간을 상상하면 고통을 잊을 수가 있다고 했다. 같은 동호회의 김지현 씨(33)는 서른 살에 찾아온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보낸 20대가 지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알 수 없는 고독과 우울함이 찾아왔다고 했다. “달리는 시간은 오로지 스스로와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같이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게 마라톤이다. 이게 바로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겠는가.” 김 씨는 마라톤을 통해 고독감을 이겨냈고, 기량도 꾸준히 향상시켜 지난해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마라톤에 대해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 ‘러너스 하이’ 또는 ‘러닝 하이’라고 불리는 도취감이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기분이다. 동호회원들에게 러너스 하이에 대해 물었더니 대답이 제각각이다. 김진환 씨는 “10㎞ 쯤 달리면 근육 피로가 극에 달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데 이 지점에서 2~3㎞ 더 달리면 통증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씨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김 씨는 “평생 한 번 느껴봤다”면서 “어느날 10㎞ 지점에서 고통이 사라지고 말할 수 없이 상쾌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의 좋은 점
마라톤의 운동효과는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우선 심폐 지구력 향상시켜 튼튼한 심장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운동이다. 살빼기에도 좋다. 사람의 몸은 30분 이상 달리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연소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체지방을 줄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며 식이요법을 통한 살빼기와는 차원이 다른 건강 감량법이다. 또한 혈액순환이 잘 돼 성인병 등의 예방 효과도 있다. 대부분의 러닝 동호인들은 마라톤의 진정한 장점은 신체적인 부분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5㎞, 10, 하프, 풀코스 등 분명한 목표치를 정한 뒤 처절하게 자신과 싸워 얻어내는 성취감이야말로 마라톤의 진정한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긴 거리를 지속적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고통, 지루함, 피로감, 더위, 추위 등을 이겨내야 하지만 이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마라톤의 성취감이라는 설명.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마라톤의 매력으로 ‘멋’을 꼽는 사람도 있다. 동호회원 안동빈 씨는 “달릴 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낭만이 가득한 운동이다”고 말했다. 마라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리하면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성취감을 맛보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본의 아니게 무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진환 씨는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둬야하며, 찌든 일상을 달리기로 털어내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해야 부상 등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라톤 운영 전문회사 ㈜이맥스21
코스개발에서 엘리트 선수 섭외까지
마라톤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마라톤 대회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도 늘어났다. 이번 LG화재제4회코리아오픈마라톤대회를 공동주최하는 ㈜이맥스21은 지난 99년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마라톤 시장을 개척한 회사로 매년 10여 개의 마라톤 대회를 기획ㆍ운영해왔다. 마라톤 대회 운영은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한 부문이다. 코스를 개발하고, 대회를 구성하며, 경기기록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설물 제작, 협력구성까지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는 사업이다. 대회에 따라서는 엘리트 선수 참가를 섭외해야하기도 한다. 이번 LG화재-제4회 코리아오픈마라톤대회는 풀코스, 하프코스, 10㎞, 자선걷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키즈러닝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치러진다. 잠실주경기장을 출발해 한강변의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코스를 달리게 된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각 부문 1위 수상자 및 최다 참가단체, 특별 순위자 등을 대상으로 오는 10월 중국 베이징서 열리는 북경마라톤 대회 참가권을 제공한다. 때문에 해외대회 참가를 목표로 두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참가 열기가 뜨겁다. 참가자격은 풀코스의 경우만 18세 이상이며, 나머지 부문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 신청이 가능하다. 접수는 3일까지 홈페이지(www.koreaopenmarathon.com)를 통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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