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유망한 정보기술(IT) 회사를 인수하려는 최사장. 주식 인수 가격에 대한 최종 협상 전에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운다. 사전에 꼼꼼하게 분석해 보니 인수 대상 기업의 주당 가치는 5만원 수준. 4만5,000원 안팎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면 이득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깐깐하기로 소문난 정사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대뜸 주당 3만5,000원을 제시하는 것 아닌가. 웃음을 가까스로 감추며 최사장은 덥석 도장을 찍고 말았다. 하지만 계약이 끝나고 회사를 직접 경영해 보니 여러 곳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기술력ㆍ판매망ㆍ시장 반응을 엄밀히 다시 따져본 결과 인수했던 기업 가치는 주당 3만5,000원 정도에 겨우 턱걸이다. 정사장이 순순히 3만5,000원을 부를 때 좀 수상쩍다 싶었는데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다. 최사장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협상 전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했지만 막상 협상장에선 게임 이론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게 문제였다. "자기 회사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정사장이 3만5,000원을 처음 제시했다는 건 회사 실제 가치가 그 정도 밖에 안되거나 그보다 못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런 의구심을 가져야 했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제 현상을 '게임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가 꺼내 든 화두는 회사 인수 협상은 물론 광고, 독과점, 할인마트의 최저가격 보증제,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 미술 경매 등 다양하다. 그는 "게임이란 자기 자신 이외에 누군가가 존재하며 누군가와 자신간의 전략적 상호 작용에 의해 최종 결과가 실현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게임에서 개인의 이해 득실은 자신의 선택 뿐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줄이려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선거철이면 극성을 부리는 정치권 줄서기. 게임 이론에 따르면 누가 유능한 지도자냐 보다는 누구 앞에 더 많은 정치인이 줄을 서 있느냐, 혹은 앞으로 누구 앞에 더 많은 정치인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느냐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한다. 게임이론의 안경을 쓰고 본 세상 온갖 일들이 무척 흥미롭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