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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은 그동안 대표적인 지역 나눠먹기 사업으로 변질됐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것도 한 원인이지만 2003년 첫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이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사업이 휩쓸렸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의 경우 임기 때 경제자유구역을 유치하는 것이 지역구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지역민들 입장에서도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정부에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추가 지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강원과 충북 지역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다. 현재 충북은 오송 바이오ㆍ교육 메카와 충주 그린물류ㆍ관광타운 등을 중심으로 총 5개 권역(13.06㎢)을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할 예정이고 강원도는 강릉과 동해 일원 4개 지구(10.78㎢)에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을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강원과 충북에만 경제자유구역이 없다는 이유를 댄다. 다른 지역은 다 있는 만큼 우리도 경제자유구역을 하나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미 수조원대의 투자수요를 확보하고 지정요건을 채웠다는 게 해당 지역의 주장이지만 평가를 담당하는 민간위원들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사실 강원과 충북 지역까지 외국기업들이 투자할 이유가 있느냐"며 "앞서 지정돼 있는 곳들 중에서도 대구ㆍ경북 등은 대표적으로 정치논리에 지정된 곳"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제자유구역이지만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경제자유구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으로 4.3%에 불과하다. 960억7,000만달러 중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온 자금은 41억4,000만달러에 불과하다. 이중 인천이 19억3,000만달러로 가장 많고 대구ㆍ경북은 4,000만달러, 황해는 1,000만달러에 그치고 있다. 지금도 많은데 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12일 "전 국토를 경제자유구역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순위보다도 평가의 절대치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정부는 강원ㆍ충북을 포함한 이번 신규 지정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표를 갖고 있는 지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경제성 만을 따져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실제 2월 정부는 5월을 목표로 경제자유구역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올해 5월'이라는 부분을 따로 강조할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역의 요구와 정치적 부담은 정부의 판단 시점을 뒤로 늦추게 만든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홍 장관의 중동 출장이 지정 작업이 뒤로 미뤄진 이유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도 민간위원들이 일부 추가 지정 지역에 회의적인 만큼 의견을 취합하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강원과 충북 건과 관련해서도 경제자유구역으로 추가지정을 해주더라도 ▦몇 년 안에 요구조건을 맞추거나 ▦승인지역을 축소하거나 ▦사후점검에 따른 지정유지 철회 등 조건부로 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경제성이 없다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뜻대로 경제자유구역을 활성화하고 외국인 유치를 늘리려면 추가 지정 작업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자체의 우선 지정 받고 보자는 식의 경제자유구역 신청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경부도 2월 경제자유구역이 "실질적인 경제자유 확보가 미흡하고 입주기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 취약해 투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투자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책연구원의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하려면 일체의 정치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민간위원들이 판단하는 것에 따라 원칙대로 하면 된다"며 "표심에 원칙이 흔들린다면 경제자유구역 사업은 또 다시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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