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기조절 차원의 출구전략보다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도록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유연성 등) 개혁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인 만큼 차제에 풀어야 합니다.” 김기환(77ㆍ사진)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6일 서울경제신문 창간 49주년을 맞아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성장잠재력을 도모할 수 있는 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하며 지금 못하면 미래가 없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비상경제대책회의에도 참석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김 부의장은 특히 “현 정부가 금융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우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비스산업 육성에 대해서는 “의료는 물론 교육도 정부가 붙들고 있다가는 발전이 요원하다”며 완전히 개방해 시장 마인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의장은 특히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들이 과거에는 가장 큰 애로로 노사문제를 꼽았지만 지금은 세금을 지적한다”며 조세 정책의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김 부의장은 두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나이를 먹어 뭘 읽어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며 겸손해했지만 거시와 세제ㆍ금융, 최근 화두인 서민정책까지 두루 꿰고 있었다. 김 부의장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 그 중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며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세계경제의 룰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모습입니다. ▲ 세계가 놀라고 있어요. 신속하고도 대규모로 집행한 부양책 효과가 컸습니다. 일각에서 더블딥을 우려하지만 비관적으로 볼 것은 아닙니다. -향후 경기회복의 키포인트를 꼽는다면요. ▲ 역시 수출입니다. 내수를 확대한다 하지만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우리의 최대 시장인 중국이 대대적 경기부양책으로 버티고 있어 상황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어 수출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위기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구전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 출구전략은 일러야 연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출구전략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닙니다. 미리 준비해놓았다가 시기가 오면 계획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저금리도 금융통화위원회가 판단해 서서히 올리면 그만이에요. 정말 큰 문제는 구조개혁입니다.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혁과 구조조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인 만큼 이 참에 풀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로 꼽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 구조조정입니다. 위기 탓에 개혁이 잠시 멈춘 측면이 있어요. 비정규직법 문제가 대표적인데요. 법 시행을 유보한 뒤 2년 정도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하는데 정치권이 제대로 컨트롤을 못합니다.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노동귀족’으로 불리는 노동계 일부 세력이 과도하게 임금을 올리고 양보하지 않다 보니 기업은 투자를 못하고 고용 유발이 안 돼 양극화만 심해집니다. 하루빨리 결론을 내야 합니다. 다행히 노동계도 강경 일변도 태도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 위기 후에는 고용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중소기업 일괄 만기연장 등을 통해 일단 망하지는 않게 도와줬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정부가 막아줄 순 없죠. 비정상적인 정책을 서서히 걷어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잠재성장률을 갉아먹을 수 있어요. 망할 기업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돼야 합니다. -정부가 서비스 선진화를 내세우지만 반발도 거센데요. ▲ 13억 중국에 이기려면 ‘일당백’의 마인드가 필요해요.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합니다. 제조업은 한계가 있고 두뇌로 승부하는 서비스산업으로 가야 하는데 개방이 필수 조건입니다. 교육이 대표적이에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교육의 힘이 컸습니다. 이젠 교육의 질을 높일 때입니다.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싱가포르처럼 문호를 열어 대학이 해외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예요. 의료산업은 조금만 빗장을 열어도 효과가 클 것입니다. 의료ㆍ임상기술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벌써 우리나라로 원정치료를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류대학, 일류병원을 키우려면 경쟁이 해답이에요. -정부가 서민대책에 열을 올리는데, 일각에선 보수정부의 정체성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 서양의 역사를 보면 보수정부가 주요 복지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자주 보는데 대통령은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각료들이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서민대책 홍보전략을 보면 어설픈 게 많습니다. -위기 후 금융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 현 정부에 불만이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국력을 감안할 때 금융이 국제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금융위기 후 감독과 규제 문제가 제기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규제가 약해 문제였던 적은 없습니다. 정부가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내세우며 자본시장통합법도 만들었는데 현 정부 들어선 녹색성장 등에 치여 금융이 쏙 들어갔어요. -해외투자 유치가 정부 의지만큼 잘 안 되고 있는데요. ▲ 과거 외국투자가들이 설문조사를 하면 노사문제가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2~3년 전부터 세금문제로 바뀌었어요. 해외 주요국들보다 누진도가 높고 세법이 복잡해 집행기관인 국세청의 재량이 너무 큽니다. 현 세제가 산업화 시대 틀에서 못 벗어나 연구개발(R&D)이 중요한 지식산업시대엔 잘 맞지 않아요. 이젠 세제도 세계화에 발맞춰야 합니다. 국세청 개혁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최근 고민하는 문제는 어떤 것인지요. ▲ 중소기업 금융문제가 가장 큽니다. 우리 중소 금융은 정책금융에 너무 의존해요. 부처 과장들마다 중소기업 지원책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은행은 시장논리로 접근하고 중소기업도 이런 금융자금을 쓸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끝으로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요. ▲ 금융의 패러다임이 구미 선진국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위기 후 한중일 극동아시아가 떠오르고 있어요. 이 지역이 전세계에 자본을 수출할 것입니다. 잘 활용하면 우리가 세계 금융의 룰을 바꿀 수 있습니다.
■ 김기환 부의장은 김기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국내 1세대 유학파 출신 경제브레인이다. 버클리대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로 지내다 당시 신현확 경제부총리가 국제경제에 정통한 그를 자문관으로 부르면서 경제정책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상공부 차관 등 고위관료로 각종 경제정책을 입안했고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외경제 특사 자격으로 정부를 대표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직접 회담을 펼치며 위기극복의 공을 세웠다. 참여정부 시절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처음 주장하며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역설하는 등 국제금융 분야의 원로로 활발히 활동했다. 현 정부 들어선 국가 경제의 대계를 설계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공공기관 선진화 등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상당 부분이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서울시장 시절 세계기업인자문단 멤버로 인연을 맺었다. 현 정부 각료들과도 두루 인연이 깊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경원 금융정책실장 시절 김 부의장과 IMF 협상 핵심멤버였고 사공일 무역협회 회장은 KDI 원장 시절 부원장으로 발탁한 바 있다. ▲1932년 경북 의성 ▲1959년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석사 ▲1971년 UC버클리대 경제학 박사 ▲1970~1976년 미 오리건주립대 경제학과 부교수 ▲1979~1981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자문관 ▲1982~1983년 KDI 원장 ▲1983~1984년 상공부 차관 ▲1997~1999년 대외경제협력 특별대사 ▲1999년~골드만삭스 국제고문 ▲2001년~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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