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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씨의 히말라야 등반史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한국 최고의 클라이머로 급부상한 박영석씨가 히말라야에 발을 처음 디딘 때는 지난 89년이다. 그는 히말라야 첫 원정에서 랑시사리(6,247m)를 오른 데 이어 90년 두번째 원정에서 히말라야 7,000m급 봉우리 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랑탕리(7,205m)를 동계시즌에 세계 처음으로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박씨가 고산등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에베레스트 등반에서였다. 그와 에베레스트와 의 인연은 유별나다. 그는 지난 91년부터 95년까지 세계 최난 거벽으로 통하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무려 네 차례나 도전했다. 그러나 남서벽은 끝내 오르지 못하고 대신 노멀 루트인 동남릉을 통해 에베레스트를 안을 수 있었다. 박씨는 그 대신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산소없이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에베레스트 무산소등정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에베레스트는 그에게 영광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지난 91년 남서벽 해발 7,000m대의 절벽에서 1,000m나 아래로 추락했다. 또 93년에는 피붙이와도 같은 후배 두 명을 잃었다. 지난 95년 티벳쪽으로 에베레스트 북동릉에 도전했을 때는 대원들, 사다(셀파들의 우두머리) 락파, 셀파들과 함께 눈사태에 휩쓸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왔다. 박씨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으며 촉망받는 젊은 사다 락파는 목숨을 잃었다. 그는 강한 근성과 고집을 가진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지난 94년 초오유에 이어 96년 북면 노멀루트로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박씨는 97년 봄 다울라기리 등반에서 다시 한 번 그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다울라기리는 95년,96년 겨울과 96년 봄 시즌 두 차례나 도전했으나, 두 번 다 강추위와 폭풍설 속에 갖혀 죽음 직전까지 가다 겨우 살아나오곤 했던 그에게는 악몽의 산이었다. 그런데 그는 세 번째 도전하여 끝내 성공했다. 그는 지난 97년 다울라기리 등반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한국대학산악연맹 원정대의 등반대장으로서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가셔브룸 1,2봉 등반에 나서 연속등정에 성공했다. 한왕용, 유석재 대원과 함께 북서벽 노멀루트로 정상을 공략한 1봉 등반은 베이스캠프(5,200m) 도착 9일만에 이룬 쾌속등반이었다. 박씨가 세계 산악계를 경악케 한 해는 지난 97년. 그는 해발 8,000m가 넘는 고봉을 한해 동안 무려 다섯 개나 올랐다.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는 그해 봄 다울라기리 (8,167m), 여름 가셔브룸1봉(8,068m)과 2봉(8,035m)에 이어 9월 초오유(8,201m), 그리고 10월 로체(8,516m)마저 등정했다. 비록 이 기록은 지난해 박씨가 로체 정상을 밟지 않았다는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수정됐으나, 그의 괴력은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 한편, 박씨는 히말라야의 산들 이외에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와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50m)도 올랐다. 그와 아내 홍경희씨는 뉴질랜드의 최고봉 마운트 쿡(3,754m)을 특히 좋아한다. 박씨는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50m)와 유럽 엘브루즈(5,640m)도 모두 다녀왔다. 박동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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