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보유 지분매각이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등 굵직한 매각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밝힌 후 정부가 추진하던 각종 민영화 작업은 사실상 모두 중단됐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총알'을 아끼면서 인수합병(M&A) 시장의 매수세도 얼어붙어버렸다.
공기업 M&A 시장에도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일 매각소위원회를 열어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이랜드의 쌍용건설 지분매매 계약을 심의했다. 당초 공자위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승인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더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매조건에 대한 캠코와 이랜드의 견해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공자위의 한 관계자는 "이랜드 측이 M&A에서 통용되는 조건을 훨씬 상회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경기침체에 발목 잡힌 M&A=M&A가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기침체에 따른 자금부족이다. 매수 기업들은 침체 장기화를 우려해 한 번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딜에 소극적이다. M&A에 나서더라도 '승자의 저주'를 우려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배짱 협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값을 받아야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정부로서는 매수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랜드의 경우 쌍용건설 실사과정에서 발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에 대해 캠코에 보증을 더 해주고 가격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일반적인 M&A의 경우 우발채무의 부실 가능성에 따라 향후 손해배상 조건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랜드 측은 캠코가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판을 깨버리겠다는 강수를 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분매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 경기가 부진해 주가가 크게 떨어져 제값을 받기 어렵고 인수자금이 워낙 커 선뜻 나서는 기업도 없기 때문이다.
캠코의 한 관계자는 "기금운용시한(11월22일)까지는 지분을 팔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면서 "시한 내에 매각이 안 되면 결국 국가에 현물 반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가 운영 중인 예쓰ㆍ예나래ㆍ예솔 등 가교저축은행 매각이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인수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렇다 할 매수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의 경우 추가 저축은행 인수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저축은행들은 자기자본 확충에도 힘겨운 모습이다.
◇정권 교체기 "민감한 사안은 차기 정부로"=대통령 선거가 4개월 후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치권 바람도 정부 보유 기업 매각의 큰 걸림돌이다. 굵직한 M&A는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박 전 위원장의 발언 이후 우리금융지주와 산은금융지주 민영화는 중단됐다.
우리금융의 경우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지분매각을 추진했지만 정치권 입김에 한순간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현 정부 들어 지난 2010년부터 3번 시도한 우리금융 매각이 결국은 다음 정부로 넘어간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B금융지주 등 우리금융 인수에 관심을 보이던 금융계가 박 전 위원장의 발언 직후 모두 입찰을 포기했다"며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의 뜻에 반해 행동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추진해온 산은금융지주 연내 기업공개(IPO)도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통합당에 이어 여당인 새누리당마저 산은지주 IPO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오는 2014년 5월까지로 정해져 있는 산은지주 IPO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면서 현 정권 내 IPO 추진에 부정적이다. 이에 따라 9월 정기국회에서는 사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책금융공사가 진행 중인 한국항공우주(KAI) 매각 역시 성사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인수의향서 접수 결과 대한항공 한 곳만 제출해 유효경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사는 31일까지 예비입찰을 받을 방침이지만 대한항공 이외의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경우 수의계약을 맺는 방법도 있지만 정권 말 특혜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M&A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시비가 불거질 수 있는 계약은 어려울 것"이라며 "대한항공의 재무상황이 괜찮다면 그나마 부담이 덜 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전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