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국 상원의원이 몇 안 되는 미국 면화 농가에 매년 40억달러를 보조금으로 줘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올린다. 그러면서 면화 농가들이 손해를 보는 면화 농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단다. 그런데 면화는 미국 시세 절반 가격으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 조지프 E. 스티글리츠 교수는 신간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개발도상국의 형편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불공정 무역 정책을 조목조목 꼬집고 있다. 총성만 없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는 국가간 협상장. 돈은 물론 경험과 지식도 뒤지는 개발도상국들로서는 애당초 선진국들과 동등하게 어깨를 나누고 경쟁할 입장이 못 된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얘기하면서 선진국들은 뒷전에서 터무니없는 횡포를 부린다. 말로는 보조금을 철폐하겠다고 해놓고 여전히 자국 농가에 엄청난 지원금을 뿌린다. 정보경제학이라는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자유 무역을 외치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질타한다. "유럽의 소는 하루 2달러의 정보 보조금을 받는다. 개발도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하루 2달러 미만의 소득에 의존해 살고 있다. 그러니 개발도상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유럽의 소가 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공정 무역 정책들을 비판하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 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이 아닌 지구촌 모든 국가에게 이롭고 공정한 무역정책을 제시한다. 그의 제안은 '무역자유화가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자유롭게 무역하되 세계 무역을 활성화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선진국이 독차지하지 말고 개발도상국 등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나누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어떤 것일까. 우선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은 그들보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모든 상품을 제한없이 수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발도상국에게 이른바 한 국가가 수입품을 허용하는 정도를 말하는 '시장 접근'의 폭에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개발도상국 정부에게 농업 보조금 혜택을 제한하라고 엄포를 놓으며 뒷전에서는 자국 농가에게 엄청난 지원금을 뿌리는 이중적인 농업보조금 정책도 철폐해야 한다. 선진국은 '원산지 규정'(어떤 제품의 원산지 국가를 수립하는 기준)과 같은 세부적인 협상 주제 등에 대해서도 개발도상국에게 보다 유연해야 한다. 선진국은 원산지 규정 같은 기술적 조항들을 빌미로 개발도상국에게 엄청난 양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저자는 선진국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개발도상국에세 세심한 배려와 지원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발도상국은 약한 경제력 탓에 막상 각종 무역 규정을 시행할 때 선진국에 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타결된 무역 협정을 실천하려면 개발도상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 부담도 짊어져야 한다. 똑 같은 금액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선진국에 비해 국내총생산 규모가 적은 개발도상국이 느끼는 짐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 무역의 '공정성'에는 결국 강자의 '약자 배려정신'이 발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독자들은 그의 결론에 조금은 우울할지 모른다. 선진국의 '기사도 정신'을 토대로 한 그의 지구촌 유토피아가 행여 그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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