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31로 호구를 치고 백30을 기다려 다시 33으로 또 호구를 친 이 수순. 너무도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원래 쌍호구는 절대로 절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안전하고 두터운 행마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상식의 옆구리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었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흑31로는 참고도1의 흑1에 꽉 잇는 것이 정답이었다. 백이 2로 단수를 치면 감연히 3으로 기어나오면 된다. 기어나온 흑은 결코 잡히지 않는다. 백6으로 완강히 차단해 보아도 흑7 이하 13으로 무난히 수습된다. 만약 백이 14로 고집스럽게 잡으러 오면 흑15로 끊으면 된다. 수상전은 흑승이다. 그러므로 백은 14로 15의 자리에 잇는 정도이며 흑은 14의 자리에 밀어 큼직하게 살게 된다. 중앙의 흑대마는 A와 B가 맞보기여서 깨끗하게 살아 있다. 실전보의 흑33으로 참고도2의 흑1에 기어나오고 싶지만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 흑3 이하 11이면 우변은 모두 흑집이 되지만 백12로 잡으러 오면 살 도리가 없다. 백18까지로 두눈이 나지 않으며 탈출구도 모두 막혀 있다. 호구의 허점이 극명하게 노출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장쉬는 아낌없이 33으로 몰아버렸던 것인데 백이 34로 받은 상태에서 형세판단을 해본 장쉬는 깜짝 놀랐다. 평범하게 두어서는 흑이 지는 바둑이 아닌가. 그는 흑35, 37로 승부수를 띄웠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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