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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조선후기의 미학
입력2001-05-16 00:00:00
수정
2001.05.16 00:00:00
간송미술관, '추사와 그 학파展'서화를 통해 조선후기의 사상과 그 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읽는다.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ㆍ1786- 1856)의 서화가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전시회를 마련한다. 추사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은 물론이고, 그 후대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지난 13일 시작해 오는 27일까지 계속되는 '추사와 그 학파전'에 모두 120점의 작품을 선보여 추사 예술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추사의 작품을 기준으로 한 가운데 신위(申緯)ㆍ권돈인(權敦仁)ㆍ이조묵(李祖默)ㆍ조희룡(趙熙龍)ㆍ김수철(金秀哲)ㆍ이 한철(李漢喆)ㆍ허유(許維)ㆍ이하응(李昰應)ㆍ김석준(金奭準)등 그와 더불어 한 시대양식을 일궈낸 인물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또 간송미술관이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의 수장품을 정리 연구해 이를 전시하기 시작한 지 30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간송미술관은 1971년 겸재 정선을 시발로 매년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정기전을 열어 이번까지 모두 60회의 작품전을 개최하고 있다.
추사 관련전의 경우 1972년의 제2회와 3회 정기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추사는 조선 성리학이 마침내 그 고루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을 때 사상적 대안을 찾은 인물.
그것은 바로 청나라의 고증학이었다. 추사는 청조고증학파가 추구하는 학예 일치의 이상적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서예를 순수한 조형예술로 승화시켜 놓은 사람이다.
최완수 민족미술연구소 소장은 "추사체의 특징은 극도로 절제된 추상적 회화미에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서화불분론(書畵不分論)의 예증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림에서도 극단적인 감필(減筆)로 대상의 본질만을 압축 표현하려는 형식을 보여, 이른바 추사의 일격화풍(逸格畵風)을 완성했다는 것.
그가 청조고증학의 문호를 연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조 이후 불어닥친 북학운동고과 만난다. 사회개혁을 꿈꾸던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중인계급이 그 주체세력으로 나설 수 있는 길을 텄다. 홍대용, 박지원같은 선각자들이 청나라에서 북학 이념을 배워 온 것도 그런 분위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
추사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훗날 강화도조약의 주역인 신헌, 유대치, 오경석은 물론 서원철폐 등으로 기존 성리학에 반기를 들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 작품이 나오는 그의 동료와 제자들의 작품은 매우 다채롭다. 초상화의 대가였던 이한철은 '이하응 초상'과 '묘길상' 등의 담채화를 통해 스승의 뜻을 관철했고, 김수철 역시 '설중한매(雪中寒梅)' '무릉춘색(武陵春色)'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추사의 예서와 이하응의 행서, 추사와 권돈인의 서예 등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그 영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것도 재미있는 착상이다.
최완수 실장은 "치세능력을 잃은 성리학을 대체할 사상으로 청조고증학을 염두에 두고 이를 새로운 사회이념으로 등장시키려 했던 것은 그가 단순한 예술가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고 설명한 뒤 "서세동점(西勢東占)이 없었더라면 중인계급 중심의 북학파 계열이 역사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용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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