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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이용만(李龍萬) 은행연합회 상임고문께

그동안 없다가 갑자기 새로 만들어진 자리이니 만큼 나름의 역할을 찾느라 바쁘시겠습니다.고문님은 매사에 적극적이셨고 대단히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교분을 쌓아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하루에 아침 약속을 두번, 점심 약속을 세번, 저녁 약속을 네번 하는 적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범인(凡人)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요. 너무 왕성하게 일을 하신 탓인지 고문님께서는 역경도 있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에는 뜻하지 않게 외국에 오래 나가 계셨고 급기야는 옥고 치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고문님께서는 「자의반 타의반」의 선배격인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와 뜻을 같이 하셨습니다. 지금도 자민련 경제대책위원장직을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문님은 종금사 사장·은행장·은행감독원장·재무부장관 등을 역임하시면서 금융계에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기신 분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사의 산증인이신 고문님이 금융계로 「컴백」하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미국 금융사 뒤적여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의 뇌리에 박혔던 인상깊은 일화가 새삼 떠오릅니다. 1804년 어느 날 뉴욕은행(BON)의 해밀튼행장과 맨해튼은행(BOM)의 버르행장이 결투 벌였지요. 휘파람 소리가 나는 순간 두 사람은 총을 뽑아 들었고, 해밀튼행장의 무릎이 꺾이기까지는 몇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은행인 뉴욕은행의 초대행장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맨해튼은행의 후신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행장실에는 아직도 그 총이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100년 가까이 된 그 권총은 미국의 파이어니어(개척)정신과 금융기관간 치열한 경쟁의 역사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고문님께서 익히 알고 계시듯이 200년 가까운 미국 금융기관 경쟁사는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그동안 경쟁에서 진 은행들이 수없이 쓰러졌지만 정부나 정치권을 탓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도 섣불리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뒤탈이 없었던 것이지요. 의회도 비록 로비는 받았지만 넘지 않아야 할 대목에선 자제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들도 눈치 보거나 기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문님께서는 지난 98년 12개 종금사가 문을 닫고 5개 은행이 간판을 내리는 것을 보고 대단히 마음이 아프셨을 겁니다. 당시 문을 닫은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은 현실에 승복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도 있지만 사사건건 「감놔라 대추놔라」고 했던 정부와 정치권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지요. 고문님께서도 그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금융기관들은 요즘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과감한 변신을 모색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해들어 눈빛이 풀리고 냉소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는 유감스럽게도 고문님의 「귀향」과 무관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할 말은 많지만 내놓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은행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는 은행연합회가 제대로 된 목소리 내기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고문님이 계신다고 해서 목소리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예단할 수 없고 또 어찌보면 오히려 더 큰 소리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문님 취임과정에서의 불투명성과 주변의 냉소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문님의 취임은 『아직도 은행권에 눈치보기와 낙하산 인사가 성행하고 있다』는 인식을 대내외에 심어주고 말았습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금융개혁 의지 의심케 하는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합니다. 믿기 싫지만 자민련의 정치자금과 연계짓는 시각도 일부 있습니다. 벼룩을 잡아다 유리컵에 넣으면 뛰어서 달아납니다. 그런데 컵위에 투명한 유리뚜껑을 놓아보세요. 벼룩은 뛰다가 뚜껑에 부딪치기 몇차례 반복한뒤 스스로 뛰는 높이 낮춥니다. 나중에는 뚜껑을 치워도 그 이상 높이 뛰지 못하지요. 한 은행 임원은 자신이 마치 「유리병 속의 벼룩」같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고문님이 공동여당의 경제대책위원장이시고 금융계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연륜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지만 기대보다는 한숨이 앞서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바야흐로 선거철입니다. 고문님의 취임은 낙천자에 대한 보상과 선거공로자에 대한 포상인사가 금융계와 공기업 주변에 또다시 만연할 것이란 우려 현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고문님 개인적으로 봐도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불굴의 의지 가지신 분이 의욕을 갖고 뛰어든 정치판을 뒤로 하고 다시 과거 기웃거리는 모습은 고문님 답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자리는 李龍萬이라는 사람이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은행도 살고, 자신도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심사숙고 하시기를 감히 부탁드립니다 김준수 국제부장J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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