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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후유증' 크다
입력2000-08-20 00:00:00
수정
2000.08.20 00:00:00
오철수 기자
'상봉 후유증' 크다허탈감에 식욕부진·불면증 호소
꿈에 그리던 혈육을 50년 만에 만나 한을 푼 8·15 이산가족 상봉자들은 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떠나보낸 부모형제가 눈앞에 아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등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또 헤어진 뒤의 허탈감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식욕부진에 시달리거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가 하면, 심지어 평소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부산에서 양조장을 하는 박효만(65·부산시 수영구)씨는 『북에서 온 형에게 50년 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감격은 실로 컸다』며 『언제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막상 떠나보내고 나니 형이 눈 앞에 아른거려 심정이 착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일손마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처남 권기준(66)씨를 떠나보낸 김재동(81·경북 안동시)씨는 『무사히 잘 갔는지 몸살은 안났는지 등 이것저것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 이틀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심난하다』고 심정을 밝혔다.
형 황종태(66)씨를 만난 종률(63)씨는 『만나기 전에는 형이 고위층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나니 걱정이 더 늘었다』며 『허탈한 마음에 잠도 못자고 직장에 나가도 일이 손에 안잡힌다』고 털어놨다.
아들 리명수씨(66)를 다시 북으로 떠나보낸 김봉자(86·여·서울 송파구)씨는 전에는 아들이 살아 있기만 바랬는데 이제는 잘지내라며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지만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빠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아픈 몸을 휠체어에 싣고 방북했다가 사망소식을 통보받고 돌아온 김금자(69·여)씨는 귀환 후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김씨는 『오빠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만큼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하다』며 『방북 전에 다친 허리도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도 몹시 쑤셔 21일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정선화(94·서울시 동대문구)씨와 함께 북에 사는 동생 조진용(69)씨를 만난 형 진수(73)씨는 『동생을 보내고 나니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누워계신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차마 동생이 북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족상봉의 소원을 풀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오히려 가뿐해졌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북에 사는 형 박섭(74)씨를 만난 병련(63·서울시 양천구)씨는 『꿈에 그리던 형을 만나고 나니 5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다』면서 『역시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호(90)씨는 북에서 아들을 만나고 온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짧은 만남 후의 기약없는 이별로 인해 잊혀졌던 것들이 눈으로 확인되면서 그리움은 더욱 생생해지는 반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초조함이 커지면서 심한 허탈감과 상실감을 겪을 수 있다』며 『현실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게 후유증을 이기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노인성 치매전문의 이강희(42·강북신경외과)씨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상봉 이후에 뇌졸증이나 우울증 등 노인성 질환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김정일(43)씨는 『50년 동안 기다려오면서 가슴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대상을 만나게 됨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가 급속하게 움츠러들게 돼 삶을 지탱해주던 힘을 잃을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철수기자CSOH@SED.CO.KR
입력시간 2000/08/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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